기온은 유럽보다 낮아도 더 치명적…북태평양고기압이 몰고 오는 '물먹은 열기'

프랑스를 덮친 폭염이 바짝 메마른 '건조한 열기'였다면, 한국의 여름은 결이 다르다. 기온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높은 습도까지 함께 치솟는다. 같은 35도라도 숨이 턱 막히고 몸이 쉽게 지치는 이유다. 최근 기후학계와 보건 분야에서는 고온다습한 폭염의 위험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체가 스스로 체온을 낮추는 능력을 떨어뜨려 단순 고온보다 훨씬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폭염 속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다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농민. 연합뉴스 제공

폭염 속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다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농민.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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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은 더울 때 땀을 흘리고, 이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낮춘다. 그러나 습도가 높으면 대기 중 수증기가 많아 땀이 쉽게 마르지 않는다. 몸속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실제 체감온도는 최고기온보다 훨씬 높아지고, 온열질환 위험도 급증한다. 한국 여름의 폭염은 온도계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기온보다 무서운 '습도'…WBGT와 습구온도의 경고


최근 폭염 위험을 단순 최고기온 대신 '습구흑구온도(WBGT)'나 '습구온도'로 평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WBGT는 기온뿐 아니라 습도, 복사열, 바람을 종합해 사람이 실제로 받는 열부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 기온보다 인체가 더위에 노출되는 정도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선수 안전을 위한 경기 중단(쿨링 브레이크) 기준으로 이를 활용한다.

[사이언스 스코프]한국이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고온다습한 폭염' 원본보기 아이콘

인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설명할 때는 '습구온도(공기 중 수분의 영향을 반영한 온도)'가 자주 언급된다. 이론적으로 습구온도가 35도에 도달하면 건강한 성인도 땀을 통한 체온 조절이 불가능해져 수 시간 안에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고령자나 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은 이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그늘에 들어가면 견딜 만한 유럽의 건조한 더위와 달리, 습하고 바람이 약한 한국의 찜통더위는 인체가 받는 열 스트레스의 차원이 다르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장(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은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향후 고온과 고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폭염의 위험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배경 기온이 높아질수록 같은 기압계에서도 폭염의 강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남풍형 열대야'가 부르는 24시간 재난


올여름 우리나라는 특히 고온다습한 폭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기상청은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동쪽을 중심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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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고기압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한반도는 그 가장자리를 타고 남쪽 해상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동쪽에 자리 잡을 경우, 한반도는 가장자리에서 유입되는 습한 온풍의 영향을 받아 기온과 습도가 모두 높은 날이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높은 습도가 낮의 더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기 중 수증기는 밤사이 지표면에서 빠져나가는 열을 붙잡아두는 뚜껑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밤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장기간 이어지면 인체는 피로를 회복할 시간을 잃고 온열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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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은 이제 최고기온이라는 단편적인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재난이다. 진짜 위험은 기온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사람이 체내 열을 밖으로 배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기후변화 시대, 한국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히 '더 높은 기온'이 아니다. 몸속 열을 가두는 '고온다습한 찜통' 그 자체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대비해야 할 새로운 기후 재난이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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