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돔에 갇힌 유럽 vs '여름 미완성' 한반도
폭염·장마 향방 가른 대기순환…기후변화 시대 달라진 여름의 과학

6월의 프랑스는 이미 한여름이었다. 파리를 비롯한 곳곳의 기온이 40℃ 안팎까지 치솟으면서 학교들은 휴교하거나 수업 시간을 단축했다. 강물 수온 상승으로 일부 원전은 출력을 줄였고, 병원은 온열질환자 대비 체제에 돌입했다. 초여름이어야 할 유럽은 폭염이 일상을 넘어 사회 시스템까지 흔드는 '기후 재난'을 먼저 맞닥뜨렸다.

2026년 6월 23일 유럽의 지표면 온도 분포.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과 남유럽 대부분이 지표면 온도 32.5℃ 이상을 기록했으며, 일부 지역은 55℃를 넘는 보라색으로 표시돼 극심한 폭염의 강도를 보여준다. 반면 알프스 등 산악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를 유지했다. 유럽우주국(ESA)·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센티널-3 위성 기반 지표면온도 자료) 제공

2026년 6월 23일 유럽의 지표면 온도 분포.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과 남유럽 대부분이 지표면 온도 32.5℃ 이상을 기록했으며, 일부 지역은 55℃를 넘는 보라색으로 표시돼 극심한 폭염의 강도를 보여준다. 반면 알프스 등 산악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를 유지했다. 유럽우주국(ESA)·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센티널-3 위성 기반 지표면온도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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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같은 북반구의 한국은 풍경이 달랐다. 4~5월에는 평년보다 선선한 날이 이어졌고, 6월에도 비와 구름, 잦은 기압계 변화가 한낮의 열기를 누르며 기록적인 폭염은 피해 갔다. 같은 북반구, 같은 지구온난화 시대에 왜 두 지역의 여름은 이토록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까.


답은 기온 그 자체가 아니라 '대기순환'에 있다. 지구온난화가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을 높이는 배경이라면 특정 지역의 폭염과 폭우를 결정하는 것은 제트기류와 고·저기압이 만드는 대기순환의 배치다.

서유럽 뒤덮은 '열돔'과 대서양의 경고


이번 유럽 폭염의 중심에는 '열돔(Heat Dome)'이 있었다. 강한 고기압이 특정 지역 상공에 장기간 머물며 뜨거운 공기를 뚜껑처럼 가두는 현상이다. 고기압 중심부에서 하강하는 공기가 압축되면서 기온은 더욱 올라가고, 구름 생성이 억제돼 강한 햇볕이 지표면을 달군다. 여기에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고온건조한 공기까지 유입되면서 서유럽은 이른 시기부터 기록적인 폭염에 휩싸였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노숙자 옆 반려견들이 혀를 길게 뺀 채 더위와 씨름하고 있다. 이날 파리의 기온은 41℃에 달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노숙자 옆 반려견들이 혀를 길게 뺀 채 더위와 씨름하고 있다. 이날 파리의 기온은 41℃에 달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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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의 출발점은 유럽 대륙이 아닌 '북대서양 해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장(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은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유라시아 상공의 로스비(Rossby) 대기 파동이 강화됐다"며 "이 파동이 중위도 제트기류를 따라 전파되면서 유럽 상공에 고기압을 묶어두는 열돔 형성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한 엘니뇨가 끝난 뒤에도 전 지구 해수면 온도가 기록적인 고온 상태를 유지하면서 해양에 축적된 열이 대기로 공급돼 이번 폭염의 강도를 더욱 키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더위를 장기화한 것은 상층 대기의 '대기 정체'였다. 상공 약 10㎞를 흐르는 제트기류가 뱀처럼 크게 굽이치며 고기압을 한자리에 붙잡아두는 '오메가(Ω) 블로킹(Omega Blocking)'이 형성되면서 열돔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동서로 빠르게 이동했을 고기압이 정체하면서 폭염도 함께 멈춰 선 것이다.

같은 북반구라도 올여름 유럽과 동아시아는 서로 다른 대기순환의 영향을 받았다. 유럽은 열돔(Heat Dome)과 오메가 블로킹으로 폭염이 장기화된 반면, 한반도는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이 늦어지고 비구름이 자주 발달하면서 여름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됐다.

같은 북반구라도 올여름 유럽과 동아시아는 서로 다른 대기순환의 영향을 받았다. 유럽은 열돔(Heat Dome)과 오메가 블로킹으로 폭염이 장기화된 반면, 한반도는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이 늦어지고 비구름이 자주 발달하면서 여름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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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후학자들은 이 같은 제트기류 정체가 북극의 온난화 속도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른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과 연관이 깊다고 본다. 북극과 중위도 간의 기온 차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의 흐름이 약해져 정체 현상이 잦아진다는 분석으로, 현재도 국제 기후학계의 주요 연구 과제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 없인 불가능했던 폭염"


이번 폭염은 기후변화가 극한기상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과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KNMI) 등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연구그룹 WWA(World Weather Attribution)는 서유럽 폭염 속성분석을 통해 "이번 폭염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발생하기 어려웠던(extremely unlikely)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산업화 이전보다 높아진 지구 평균기온이 폭염의 강도를 키웠으며, 특히 야간 고온 현상은 20년 전보다 발생 빈도가 100배 이상 높아졌다는 진단이다.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유럽이 지구 평균보다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는 지역이라 경고하며, 폭염이 건강·농업·에너지 기반시설을 흔드는 '사회적 재난'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같은 북반구인데…유럽은 불타고, 한국 여름은 늦은 이유[사이언스 스코프] 원본보기 아이콘

한국, '시원했던 것'이 아니라 '여름이 늦었을 뿐'


반면 한반도가 속한 동아시아는 유럽과 정반대의 대기순환 흐름 속에 있었다. 이명인 교수는 "유럽은 로스비 파동의 능선(ridge)에 위치해 고기압성 열돔이 형성된 반면,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골(trough)에 해당하는 저기압성 순환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초여름까지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를 덮지 못한 채 북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팽팽하게 맞섰다. 자주 발달한 비구름이 태양복사를 차단해 지표면 가열을 억제한 것이다. 한국이 유럽보다 기후변화에서 안전했던 것이 아니라, 한여름의 대기 구조가 완성되는 시기가 늦어졌을 뿐이라는 의미다.

전국적으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 지난달 1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택시 승강장에 폭염 대비 안개형 냉각수(쿨링포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전국적으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 지난달 1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택시 승강장에 폭염 대비 안개형 냉각수(쿨링포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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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특유의 본격적인 폭염은 상하층 고기압이 시루떡처럼 겹치는 '이중 고기압' 구조가 완성될 때 시작된다. 대기 하층의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 위에 상층의 고온건조한 티베트고기압이 2층 구조로 단단하게 얹혀야 열기가 축적된다. 초여름 한반도는 이 두 고기압이 세력을 완전히 확장하지 않아 폭염이 유예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올여름이 안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기후변화로 대기 중 수증기량이 늘어나 장마철 기습 폭우 위험은 오히려 커졌고, 기압계가 완성된 이후에는 고온다습한 극한 폭염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로 배경 기온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대기순환 조건이 갖춰졌을 때 폭염의 위력이 배가된다"며 "특히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 상승세가 가팔라 향후 고온과 고습이 결합한 치명적인 폭염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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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프랑스와 한국의 극단적인 대조는 기후변화 시대를 읽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기후변화는 모든 지역을 동일한 방식으로 데우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기온 수치가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서로 다른 여름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대기순환의 변칙성'이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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