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대 가상자산거래소 공시 ‘165번 정정’…코인원은 “수정 이력 데이터도 없다”[코인 무법지대]①
5대 가상자산거래소 공시 ‘165번 정정’
코인원은 “수정 이력 데이터도 없다”
가상자산 공시 관리 '깜깜이'
5년간 유의종목 538건·상폐 394개
2단계 법안 표류, 규율 공백 부작용
"해외 거래소에는 곧바로 해킹 사고를 알렸는데 국내 거래소와 이용자들에게는 공시하거나 알리지 않다가 4일이 지나서야 공시했다. 코인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우려해 공시·통지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상당해 보인다."(2025년5월30일 서울중앙지법)
가상자산 시장에서 공시 제도가 투자자 보호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발행사의 가격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지만 이를 감시해야 할 제도권 대형 거래소들의 관리 인프라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6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5월까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공시 정정 건수는 총 165건에 달했다. 거래소별로는 업비트가 117건으로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고팍스 39건, 빗썸 9건, 코빗 0건 순이었다.
특히 코인원의 경우 공시 관리 시스템 자체가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코인원은 "공지 수정 및 삭제 이력은 시스템상 별도로 데이터화하여 관리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통계 추출이 불가능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주식시장에서는 공시 정정이나 삭제 행위가 불성실공시로 지정돼 벌점이 누적될 경우 매매거래정지나 상장폐지 실질 심사로 직결되는 엄격한 퇴출 기준이 작동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깜깜이 상태로 방치돼 온 셈이다.
공시 부실뿐 아니라 상장과 퇴출 관리 역시 허술하긴 마찬가지였다. 최근 5년간 5대 거래소에서 투자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건수는 총 538건으로 집계됐다. 거래소별로는 코인원 196건, 빗썸 150건, 고팍스 90건, 업비트 53건, 코빗 49건 순이었다. 연도별로는 2022년 91건, 2023년 121건, 2024년 75건, 지난해 141건이었다. 올해 1~5월에는 110건의 유의종목이 쏟아졌다.
실제 최근 5년간 상장폐지(거래지원 종료) 처리돼 시장에서 사라진 코인은 394개에 달했다. 거래소별로는 코인원 150개, 빗썸 114개, 고팍스 67개, 업비트 39개, 코빗 24개로 나타났다. 이 기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밝힌 퇴출 사유로는 '발행재단 부실 등 프로젝트 위험'이 15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투자자 보호 위험'이 108건, '시장 위험' 56건, '기술 위험' 50건이 뒤를 이었다.
가상자산 시장의 공시 부실과 잇단 상장폐지는 시장 전반을 규율할 2단계 법안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장기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올해 초 명확한 규제 기준을 담은 정부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당국, 정치권, 업계 간 이견 조율에 실패하며 무기한 연기됐다. 특히 금융당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로 시중은행이 지분 '50%+1주' 이상을 보유한 컨소시엄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핀테크·가상자산 업계는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참여 범위 확대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여기에 당국이 가상자산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을 최대 34%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까지 논의하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강력한 공시 규제 장치들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디지털자산을 발행하려는 발행인은 그 디지털자산의 발행에 관한 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해 수리되지 아니하면 디지털자산을 발행할 수 없다고 규정해 유령 코인의 무단 발행을 원천 차단했다. 또한 발행신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아니해 디지털자산의 이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해당자들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거래소는 디지털자산의 거래지원 및 거래지원 종료에 관한 기준 등을 포함한 업무규정을 마련해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정명호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국제적으로 디지털자산 관련 제도 정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적절한 규제의 틀 안에서 우리나라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하고, 디지털자산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을 제고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디지털자산 발행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제정안은 필요한 입법 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가상자산 공시 및 상장폐지 제도를 주식시장 기준으로 적용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중소 거래소의 경우 발행 재단을 대상으로 협상력이 낮아 공시 정보를 요구해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코인원의 상장폐지 건수가 많은 것도 시장 부실이 아니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의 가상자산 거래지원 모범사례 기준에 맞춰 과거 무리하게 상장됐던 부실 코인들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법적 규율 없이 자율규제에만 맡기는 현 구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거래소의 이해상충 가능성, 공시 기준의 비표준화, 제재의 실효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 측면에서 취약성이 나타나고 있다"며 "발행인과 거래소 간 책임 분담, 지속 공시 의무, 중요정보 범위, 실효적 제재 수단 등을 함께 설계해 가상자산 특성을 반영한 규율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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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자율규제를 유지하면서 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법이 필요하다"며 "1차 입법에서 '하면 안 되는 것'을 정했다면 2차 입법에서는 산업 육성을 위해 '해도 되는 것'의 법적 선을 명확히 그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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