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호조에 경상수지 사상 최대
그런데 원화는 G20에서 두 번째로 약한 통화
"장부에는 들어온 달러, 실제론 안 들어왔다"
기업은 해외법인에, 개인은 외화통장에 쟁여놔

상식대로라면 지금의 환율 상승세(원화가치 하락)는 납득이 어려울 정도다. 반도체 수출은 호조고,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성장 전망은 상향 조정됐고,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최근 조정을 감안해도 국내 증시가 나쁘진 않다. 교과서적으로는 전부 '원화 강세', 즉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는 재료들이다.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환율, 코스닥 등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2026.07.08 윤동주 기자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환율, 코스닥 등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2026.07.08 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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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연초 1450원 안팎이던 원/달러 환율은 어느새 155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달러 가치(달러인덱스)는 3% 오르는 데 그쳤는데,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8%나 떨어졌다. G20(주요 20개국) 통화 가운데 원화보다 많이 약해진 통화는 터키 리라화 하나뿐이다. 고물가와 통화 불안으로 유명한 그 터키다.

수출로 달러를 쓸어 담는 나라의 통화가 왜 이렇게 약할까.


주요국 통화 연초대비 등락률. 7월 1일 기준 원화는 약세 폭이 가장 큰 통화였다. <자료:한화투자증권>

주요국 통화 연초대비 등락률. 7월 1일 기준 원화는 약세 폭이 가장 큰 통화였다. <자료:한화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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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 '환율 미스터리'의 범인으로 심리를 지목했다. 기업도 개인도 원화 대신 "달러를 쥐고 있으려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장부상으로는 달러가 넘쳐난다

경상수지 흑자와 금융계정 순자산 동반 확대. 2026년은 1~4월, 넉 달치만 반영됐음에도 지난해 수준에 근접했다. <자료:한화투자증권>

경상수지 흑자와 금융계정 순자산 동반 확대. 2026년은 1~4월, 넉 달치만 반영됐음에도 지난해 수준에 근접했다. <자료:한화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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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과의 돈거래를 기록한 장부를 국제수지표라고 한다. 크게 두 칸으로 나뉜다.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판 결과를 적는 '경상수지', 주식·채권·공장 같은 투자로 오간 돈을 적는 '금융계정'이다. 외화의 유입과 유출을 확인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지난해 두 숫자는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1231억 달러 흑자였다. 외국에 판 것이 사들인 것보다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니, 달러가 들어오는 요인이다. 올해는 더 가파르다. 1~4월 상품수지 흑자만 1081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40% 급증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를 감안하면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3000억 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대편도 만만치 않다. 금융계정 순자산, 쉽게 말해 '내국인이 해외에 투자한 돈'에서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돈'을 뺀 값도 지난해 1198억 달러 늘며 최고치를 찍었다. 이건 달러가 나가는 요인이다. 작년에는 서학개미로 상징되는 내국인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가 급증했고, 올해는 외국인이 국내 투자를 급격히 줄이면서 순자산이 불어나고 있다.


들어올 달러는 안 들어오고, 나갈 달러는 꼬박꼬박

내국인 해외투자는 꾸준한 반면 외국인 국내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자료:한국은행·한화증권>

내국인 해외투자는 꾸준한 반면 외국인 국내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자료:한국은행·한화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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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장부와 현실 사이의 틈이다. 통계에는 달러가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지만, 실제로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돈이 있다.


대표적인 게 재투자수익수입이다. 우리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벌어들인 뒤 배당하지 않고 그곳에 쌓아둔 돈을 말한다. 이 돈이 올해 1~4월 1년 전보다 124%나 늘었다. 경상수지 흑자를 키우는 데는 기여했지만,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를 공급하지는 않았다.


국내로 들어온 달러도 원화로 바뀌지 않고 있다. 거주자외화예금(국내 은행에 맡겨둔 외화예금) 잔액은 최근 두 달 연속 늘었다. 환율이 오르면 보통은 달러를 팔아 환차익을 챙기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대로 들고 있는 쪽을 택한 것이다.


반대로 달러가 나가는 쪽은 움직임이 분주하다. 아직 국제수지 통계에 다 반영되진 않았지만, 5~6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는 가팔랐다. 내국인의 해외투자도 사상 최대였던 작년 수준을 넘어설 추세다.



달러가 약해져도 환율은 안 내릴 수 있다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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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다. 달러 공급은 장부상 숫자보다 실제로는 적은데, 달러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들어오는 물은 생각보다 적고 빠져나가는 물은 그대로인 욕조와 같다. 수위(원화 가치)가 내려가는 게 당연하다.


이 진단이 맞다면 불편한 결론이 하나 따라온다. 하반기에 달러가 약해지고 엔화가 반등하더라도, 원/달러 환율의 하락(원화가치 상승) 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환율을 밀어 올린 힘이 달러 강세가 아니라 심리에서 나왔다면, 달러가 약해진다고 그 심리까지 함께 풀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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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관전 포인트는 결국 심리의 방향이다. 수출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둔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기 시작하는지, 외화예금에 잠긴 달러가 원화로 바뀌기 시작하는지, 외국인이 국내 증시로 돌아오는지다. 이 흐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수출이 잘되는데 왜 환율이 오르냐"는 질문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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