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짜는 삼성 '전국 생산지도'…실현 가능성은[Why&Next]
전국 생산시설서 차세대 분야 전환
HBM, OLED, 피지컬AI 라인으로
"시장 수요 선점" 단계 적용 가능성도
정부의 지역균형 투자 구상에 맞춰 삼성이 국내 생산지도를 재편하고 있다. 기존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생산 체계를 유지하되, 충청·호남·영남권에 차세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피지컬 인공지능(AI) 제조 기능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선 차세대 분야 수요에 맞게 기술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조차 아직 본격 착공 전인 상황에서 수백조원대 지방 투자가 계획대로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삼성은 최근 정부의 전국 단위 첨단산업 투자 계획에 맞춰 국내 주요 사업장의 역할을 재편하는 구상을 내놨다. 현재 삼성의 국내 생산 거점은 삼성전자의 경기 기흥·화성·평택 반도체 전공정과 온양·천안 후공정 거점, 삼성디스플레이의 기흥·아산·천안 디스플레이 거점, 삼성SDI의 천안·울산·청주·구미 배터리·전자재료 거점, 삼성전자의 구미 모바일 제조 거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 전국 생산시설을 차세대 반도체와 AI 제조 역량 중심으로 확장한다는 점이다. 삼성은 총 2655조원 규모의 장기 투자 계획 가운데 평택·용인 등 수도권 반도체 거점에 2030조원, 호남·충청·영남 등 비수도권에 625조원을 배치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기존 수도권 중심 반도체 생산 체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지역별로 HBM(고대역폭메모리), 차세대 디스플레이, 피지컬 AI 제조 기능을 더하는 방식이다.
가장 먼저 역할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충청권이다. 충남 온양·천안은 기존에도 삼성전자의 반도체 후공정과 첨단 패키징을 맡아온 핵심 거점이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함께 HBM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지역은 메모리 생산 이후 패키징과 테스트를 거쳐 HBM을 완성하는 후공정 거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평택이 웨이퍼 생산 등 전공정 중심 역할을 맡고, 천안·온양이 HBM 완성도를 높이는 생산 체계가 강화되는 셈이다.
호남권은 차기 반도체 팹 후보지가 될 전망이다. 삼성은 광주 등을 중심으로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전공정 거점을 장기적으로 호남권까지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의 반도체 생산지도는 경기 남부권에 집중된 구조에서 수도권 전공정과 지역별 첨단 제조 거점이 연결되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영남권 구미는 피지컬 AI 전진기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구미 사업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모바일 제조 거점으로 기능해왔지만, 모바일 수익성 악화 등 상황을 고려해 미래 산업에 대한 준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에는 기존 제조 기반을 활용해 로봇, AI 디바이스, 디지털 트윈 등 피지컬 AI 관련 생산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역할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공시를 통해 구미에 '휴머노이드 로봇라인'을 건설한다고 밝혔으며, 구미 1·2사업장 내 유휴 부지를 활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피지컬 AI는 아직 국내에서 대규모 생산성과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분야인 만큼, 비수도권 지역 투자에는 상당한 위험 부담도 따른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충청권 투자 역시 관건은 수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천안·아산 일대를 차세대 OLED 클러스터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스마트폰 중심의 OLED 시장을 넘어 자동차, 노트북, 태블릿 등 IT·전장용 OLED 수요 확대를 겨냥한 것이다. 디스플레이업계에선 수요가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업계가 실질적으로 전량 공급 중인 OLED 수요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삼성·LG디스플레이는 생산라인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디스플레이 산업은 경기 변동과 전방 수요에 민감한 만큼, 대규모 시설투자가 안정적으로 이어지려면 중장기 수요 확대가 전제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구상이 삼성의 국내 생산 거점을 전국 단위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그동안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기흥·화성·평택 등 경기 남부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번 계획은 여기에 충청권 HBM 후공정, 호남권 차기 팹, 영남권 피지컬 AI 제조 거점을 연결해 '수도권 집중형 반도체 지도'에서 '수도권 전공정과 지역별 AI 제조 거점이 연결된 지도'로 바꾸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반도체 공장 건설도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충청·영남권까지 동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려면 전력, 용수, 부지, 인력, 인허가 등 복합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반도체 팹은 착공부터 완공, 양산 안정화까지 장기간이 필요한 데다, 수십조원 단위의 자본 투입이 요구된다. 2030년 하반기 1기 팹 가동을 목표로 한 용인 국가산업단지 내 삼성전자 팹은 부지 조성공사 입찰이 지연되면서 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지역균형 전략과 기업의 투자 판단 사이에 간극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역균형이라는 정책적 명분보다 시장 수요와 수익성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실제 삼성의 투자 계획도 AI 반도체, HBM, OLED, 피지컬 AI 등 향후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짜였다. 정부가 지역 거점을 제시하더라도 실제 투자 집행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충청권의 경우 부지, 전력, 용수 등 다 준비가 돼 있는 곳이며 이미 실현 가능성과 투자 가치를 분석해 준비해 둔 것으로 보인다"며 "그에 비해 호남권 투자는 실제 집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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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삼성은 시장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며 "디스플레이의 경우 자동차, 노트북용 OLED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시장 수요를 선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준비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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