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서 타이핑·기록 업무 '제로'
영상판독 넘어 실질적 처방까지 지원
줄어든 시간만큼 환자에게 더 집중

편집자주한국 의료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만성질환 증가, 필수의료 인력 부족, 지역 의료격차 심화는 기존 의료체계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그 해법으로 인공지능(AI) 도입을 넘어 의료 전반을 재설계하는 의료 AX(AI Transformation)에 주목한다. AI가 단순히 의사의 역할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지역과 소득에 관계없이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다. 아시아경제는 빠르게 발전 중인 AI가 의료 현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짚어본다.
(Chat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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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열이 나고 호흡 곤란과 저혈압 증상을 보이는 70대 남성 김모씨가 119구급차를 타고 실려 왔다.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응급실 모니터에는 과거 진단·투약·진료 이력과 함께 방금 전 구급차에서 전송한 활력징후, 심전도, 인공지능(AI)이 추정한 중증도 등이 담긴 구급일지가 펼쳐진다. 이 정보들은 아무렇게나 나열되지 않는다. AI가 현재 환자의 증상과 관련 높은 항목을 먼저 보여주고, 상관성이 낮은 항목은 간략히 처리한다. 김씨의 과거 병력 중 폐질환, 고혈압, 당뇨, 감염 증상을 위로 올리고,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낮은 백내장 수술 이력 등은 뒤로 배치하는 식이다. 환자와 관련된 수십 가지 정보 중 바로 지금 의료진에게 필요한 것만을 솎아낸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하는 질문과 대답은 실시간 문자로 기록된다. '숨이 갑갑하다' '며칠 전부터 기침과 가래가 있었다'와 같은 문진 내용이 자동으로 입력되고, AI는 이를 기반으로 응급실 초진기록 초안을 작성한다. 의사가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칠 필요가 전혀 없다.


AI는 김씨가 패혈증(sepsis)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며 우선 검토해야 할 감별진단 후보 목록을 도출한다.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이 응급의학 가이드라인과 이 병원의 임상 프로토콜 등을 실시간으로 참조한다. 현재 환자 상태가 패혈증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의학적 근거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후속 검사 항목들이 함께 표시된다. 의사 역시 이 진단이 맞다고 판단하자 AI는 곧바로 패혈증 검사와 수액 처방 등을 불러온다. 시스템은 또 의사가 선택한 처방 세트에서 빠진 항목들을 별도로 추려 보여주며 '이 중에 추가할 것이 있는지 검토하라'라고 안내한다. 일분일초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 의사와 AI가 함께 환자를 진단하고 최종 처방까지 내리는 과정이다.

과거라면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처방을 입력하는 데만 최소 20~30분이 걸렸을 과정이 단 3분 만에 종결됐다. 김씨는 구급차에서 내린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받고 패혈증이 악화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형 아르파-H(ARPA-H)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인 응급의료 AI 연구개발(R&D) 사업 '이지스(AEGIS)'가 완성됐을 때의 작동 과정을 가정한 상황이다.


의사가 30분 걸리던 일, 단 3분 만에 종결…응급실 골든타임 바꾸는 AI [의료 AX의 미래]① 원본보기 아이콘

현재 의료 현장에선 AI가 엑스레이(X-ray),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영상 검사를 판독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의료진의 의사 결정을 돕는 실질적인 조력자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 타이핑 없이도 음성 인식으로 실시간 의무기록을 작성하고 진료문서 초안을 생성하는가 하면, 환자와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취합해 적절한 진단을 추천하고 초기 처방까지 연결한다. 국제학술지 NPJ Digital Medicine에 따르면 의료AI를 활용할 경우 영상 판독 시간이 27% 이상 단축되고, 이로 인한 의료진들의 업무 부담도 최대 6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방암 검진에 AI를 도입하니 암 발견율이 20%나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됐다.

응급실에서는 흉부 X-ray 분석 AI를 통해 의사가 놓칠 수 있는 작은 기흉이나 이상 소견을 다시 한번 검토한다. 심전도 AI는 기존에는 알기 어려웠던 좌심실 기능 저하 여부를 예측해 환자의 호흡 곤란 원인이 폐 때문인지, 심장 때문인지 판단하는 데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의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판단을 고민하고 있을 땐 AI가 반복해서 질문을 하거나 체크해야 할 부분을 짚어준다. AI 덕분에 진료의 정확성과 안전성이 높아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가상 상황에 소개된 이지스 시스템 역시 아직 개발 단계에 있지만 실제 의사가 진단했을 때와 비교해 진단 일치율과 처치 일치율이 이미 90% 이상에 달할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삼성서울병원을 필두로 전국 17개 주요 종합병원의 응급 데이터가 비식별화·표준화돼 탑재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응급의료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심근경색, 뇌졸중 등 골든타임이 생명인 4대 중점 질환을 포함해 약 30개의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다. 현장 의사들이 AI의 제안을 수정하거나 피드백을 주면, 모델이 이를 다시 학습해 더 많은 정보를 쌓으며 똑똑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AI가 실시간으로 의학 정보를 검색하거나 원격 협진 등 광범위한 업무를 지원하는 단계까지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AI가 수술로봇을 제어해 의사의 수술을 정밀하게 보조하거나 반복적이고 단순한 처치는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의료AI는 어디까지나 의사의 판단과 진단을 보조할 뿐 최종 판단은 의사가 내리기 때문에 AI가 의사의 역할을 대체할 순 없다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복잡한 수치를 계산하며, 의무기록을 타이핑하는 반복 업무에 드는 시간을 AI가 단 몇 초 만에 끝내주면 의사는 그만큼 더 확보된 시간을 환자와의 심층 상담이나 치료를 위한 정밀한 의사 결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며 "그만큼 환자가 받는 의료 서비스의 질, 진료의 질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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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X의 미래]

①진단에서 처방까지 3분…AI가 바꾸는 '골든타임'

②"AI는 의료진이 환자 곁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기술"

③의사보다 더 빠른 눈…지역병원 의료공백 메꾸는 AI

④"지치지 않는 AI, 의사에겐 최고의 내비게이션"

⑤"시골 살아도 서울 수준의 진료를"…정부가 의료AI에 팔 걷은 이유

⑥"슈퍼카 만들었는데 도로가 없다"…지방 공공의료의 현실

⑦수가 공백·데이터 파편화 넘어야…지속가능한 AX의 조건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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