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63년 만에 국보 승격
조선 후기 목조건축 가치 인정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누각인 전북 '남원 광한루'가 국보 반열에 올랐다. 판소리와 소설 '춘향전'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약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유산이다.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화려한 장식성과 실용적 구조를 두루 보여주는 것은 물론, 당대 지방 행정과 문화, 풍류가 어우러진 공간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으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뒤 약 63년 만의 국보 승격이다.
국가유산청은 남원 광한루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했다고 1일 밝혔다. 예부터 '호남제일루'로 불린 조선 후기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관영 누각이다. 기원은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희(1363~1452)가 남원에 유배됐을 당시 세운 광통루가 시초로 전해지며, 이후 전라도 관찰사 정철(1536~1593)과 남원부사 장의국이 주변 호수와 봉래·방장·영주 등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섬, 오작교를 조성하면서 오늘날 광한루원의 기본 모습을 갖추게 됐다.
광한루는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626년 남원부사 신감(1570~1631)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중건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와 수리를 거치며 원형을 유지해왔다. 상량문과 기문, 읍지를 비롯해 근현대 신문 기사까지 건립과 중건, 보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비교적 충실하게 남아 있어 건축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사료적 가치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한루는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에 머물지 않았다. 조선 시대 관리들이 공적인 연회를 열고 지역 현안을 논의하는 공간이자, 선비들이 시문을 짓고 학문과 풍류를 나누던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누각은 수많은 문인에게 영감을 제공했으며, 지역 문화가 꽃피는 무대로 기능했다.
문화사적 의미도 각별하다. 광한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판소리와 고전소설 춘향전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단순한 건축유산을 넘어 세대를 이어 공유되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오늘날에도 춘향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며 전통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축적 완성도 역시 국보 승격의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광한루는 본루와 익루인 요선각, 월랑으로 구성된다. 본루는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둥머리와 보를 연결하는 익공에는 청룡과 황룡, 거북 등 다양한 길상 문양을 새겨 조선 후기 목조건축 특유의 화려한 장식미를 드러낸다.
실용성을 고려한 구조도 돋보인다. 익루에는 온돌을 설치해 계절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1881년 건립된 월랑은 본루가 뒤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는 구조적 역할과 함께 계단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장식성과 기능성을 조화롭게 결합한 점은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광한루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공간 구성에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누각을 중심으로 펼쳐진 광한루원은 호수와 세 섬, 오작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신선 세계를 형상화한 전통 정원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축과 정원이 하나의 경관을 이루며 오랜 시간 보존돼 온 점은 다른 누각 건축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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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광한루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화려한 장식성과 실용적 요소가 조화를 이룬 건축유산"이라며 "명승 광한루원의 정원유적과 어우러져 역사·예술적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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