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이 멈춘 자리를 기록한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전국 대학 학생회 성명을 모은 아카이브 '한 표의 기록' 슬로건이다. 올림픽공원 초기 집회를 주도했던 청년들이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겨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고 있다. 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나자 선을 긋고 '참정권 침해'라는 본질에 집중하려는 성숙함이다. 아카이브 개설자는 "누군가의 한 표가 행사되지 못했다. 그 한 표가 사라지지 않게 기록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한 표의 기록'에는 220개 대학, 436건의 성명이 올라와 있다. 성명 전문을 메타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재발 방지 대책' 요구가 6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선관위·당국 규탄 50%, 진상 규명 40% 순이었다. 재선거·재투표 요구는 6%에 그쳤다.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민주주의'(423건), '참정권'(410건), '신뢰와 공정성'(383건) 순이었다.
대학가의 성명이 던진 질문은 분명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공정해야 할 투표 과정마저 부실하게 관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 표를 지킬 수 있는 나라인가"라고 묻고 있다. 취업도, 주거도 이미 기울어진 세상에서 그나마 최소한으로 공평하게 보장돼야 할 참정권마저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청년들을 정치 공론장으로 불러냈다.
20·30세대가 이토록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세대 간 자산 양극화 문제가 있다. 한은이 지난달 공개한 '가계 양극화 실태'보고서는 순자산과 소득 하위 20%인 가구 중 20~30대 비중이 2020년 7.9%에서 2025년 15.2%로 5년 새 2배 상승했다. 이 기간 모든 연령대 중에서 20대와 30대 비중만 늘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 불평등이 심화하는 데다 인공지능(AI) 업종에 치우친 이른바 'K자형 성장'에 소득 불평등마저 커지면서 청년층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지금 청년들은 먹고사는 데 불안해지고 있어 보수·진보를 따지는 건 사치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의 눈에는 여야 정치권 모두가 기득권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기댈 곳 없는 청년들에게 공정은 자신을 지킬 생존의 문제다.
이번 선관위 사태는 20·30세대들이 정치적으로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정치학계 석학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지방선거를 통해 20·30세대가 대규모로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지난달 16일 퇴임 고별 강단에서 "기존 정당은 젊은 세대의 욕구를 반영 못 한다. 젊은 세대가 움직여서 깃발을 들면 정치 세력도 따라 움직일 것"이라며 "새로운 정치의 씨앗은 청년에게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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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론화의 중심에 20·30세대가 오고 있다. 보수도 진보도 앞다퉈 청년들을 찾는다. '한 표의 기록' 청년들이 참정권 침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정치권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청년들이 정치를 밀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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