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주식 토큰화…전통 거래소 개념 소멸
영문공시 의무화·거래시간 확대로 대응
美 대비 상장사 많아…부실기업 300개 퇴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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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단순하게 증권거래만 중개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거래소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발 빠른 디지털 혁신과 해외 투자자의 국내 자본시장 접근성 개선, 부실기업(좀비기업) 퇴출 등 글로벌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 빠른 디지털 혁신 통한 근본 개혁 추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정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아시아경제와 만나 "글로벌 유동성 쏠림과 디지털 금융 혁신이 맞물리면서 향후 전 세계에서 극소수의 거래소만 살아남는 냉혹한 적자생존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나스닥 프리·애프터 마켓 투자자의 80%가 해외 투자자이고 그중 절반이 한국인일 정도로 국내 투자자들은 이미 국경을 허물고 수익을 찾아 전 세계로 나갔다"고 짚었다. 이어 "한 나라의 기업이 자국 거래소에만 상장하고, 자국 투자자만 그 시장에 참여하는 전통적 개념은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테슬라, 엔비디아 등 해외 주식을 토큰화(토크나이제이션)해 스테이블코인으로 24시간 실시간 거래하는 '디지털라이제이션'이 결합하면 전통 거래소의 개념은 순식간에 소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이사장은 "1981년 컬러 TV 방송 시작 당시 국내에 제조업체가 7~8개 있었지만, 지금 전 세계에는 삼성, LG 등 몇 개 기업만 살아남았다"며 "우리도 거래시간과 결제주기 개편은 물론, 스테이블코인과 자산 토큰화 비즈니스를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 "전세계 거래소 일부만 살아남아…글로벌 무한경쟁" [코스피 1만시대] 원본보기 아이콘

거래소의 글로벌화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 투자 저변 확대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우선 해외 개인 투자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내년부터 코스피 모든 상장사의 영문 공시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주요 상장사들 역시 자체 IR(기업활동) 조직을 대폭 확장하며 이에 대응하고 있어, 시장 글로벌화에 따른 정보 접근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파생 시장 거래 시간을 19시간으로 확대한 결과 코스피200옵션 내 외국인 거래대금 비중이 2023년 70%에서 올해 75%까지 상승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 복귀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증시 저평가 탈출, 선진국 증시 도약 위해 노력할 것"

정 이사장은 한국 증시가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과 기업 실적 상승에 힘입어 디스카운트(저평가)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저평가를 넘어 선진 자본시장 도약을 위해 부실 상장사의 증시 퇴출,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 개선, 중복상장 규제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우리 증시가 올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시가총액 세계 6위권으로 도약했다"며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선진국 수준인 3배를 넘어섰고 국내 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을 뜻하는 '버핏지수'도 미국 수준인 270%까지 상승하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 "전세계 거래소 일부만 살아남아…글로벌 무한경쟁" [코스피 1만시대] 원본보기 아이콘

한국 증시의 르네상스 이면에는 자본시장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정부와 거래소의 전방위적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2024년 5월 도입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결정적 계기로 꼽았다. "당시 기업 경영진은 실적에 비해 주가가 낮다고 불만이었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미래 성장 전략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러한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크해 밸류업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정 이사장은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추진된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은 자본시장 체질 개선의 법적 보완재가 됐다. 정 이사장은 "대주주의 한 주와 소액주주의 한 주가 동등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 아래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됐다"며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세제 지원이 더해져 기업들의 배당 촉진을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거래소의 이 같은 노력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이 투명해졌다'는 믿음을 주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반도체를 필두로 조선, 방산, K-컬처, 바이오 등 주력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주가 상승 가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정 이사장은 현재의 증시 활황이 단순한 기술적 반등이 아닌, 대한민국 자산 구조가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되는 거대한 흐름의 결과물이라고 봤다. 그는 "1990년 일본 버블 붕괴 당시 일본 가계 자산의 65%가 부동산, 35%가 금융자산이었는데 이 구조가 2020년대 들어 완전히 역전됐다"며 "현재 한국의 가계 자산 구성비는 1990년대 일본과 아주 유사한데 우리도 중장기적으로 부동산 중심에서 금융자산 중심으로 역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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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300개 퇴출'과 중복상장 금지 원칙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질적 관리를 위한 '칼날'도 매서워질 전망이다. 정 이사장은 부실기업 퇴출과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미국 증시에 5500개 기업이 상장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시장 규모도 작은데 2700개가 넘는다"며 "사업 기회를 상실한 좀비기업들이 불공정거래의 온상이 되기 쉬운데 내년까지 부실기업 300개를 퇴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복상장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메타나 구글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도 상장사는 단 하나뿐이며, 일본 역시 밸류업 정책을 통해 중복상장을 억제했다는 지적이다. 정 이사장은 "우리 시장의 중복상장 비율이 18%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제도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수요도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는 중복상장을 금지하되 경제계의 현실적 수요를 고려한 세부 기준을 금융위원회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 "전세계 거래소 일부만 살아남아…글로벌 무한경쟁" [코스피 1만시대] 원본보기 아이콘

'깜깜이' 지적을 받는 기술특례 상장 제도에 대해서는 "평가의 균질성을 위해 기술평가기관을 대폭 축소했다"며 "상장 후 10년 넘게 수익 모델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우회상장 경로로 악용되는 부실기업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시장 쏠림 현상의 주된 이유로 지적받는 반도체 레버리지 상품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취했다. 정 이사장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시황에 따라 이익률 변동성이 커 레버리지 상품의 위험성이 배가된다"고 진단하면서도 "국내 규제만 강화하면 해외 고배율 상품으로 이탈하는 풍선효과가 생기므로 글로벌 시장의 현실을 함께 고려해 제도적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담: 조시영 증권자본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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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창환 기자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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