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직장 내 괴롭힘 호소
노동부 일부 인정에도 징계는 '훈계'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1만6373건
3년 가까이 이른바 '태움'에 시달렸다고 호소해온 20대 간호사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며 병원 내 괴롭힘 관행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다. 지난 29일 MBC 뉴스데스크는 3년 가까이 태움으로 고통받던 27살 간호사가 이달 초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앞서 3년 전 꿈에 그리던 간호사복을 입고 병원 일을 시작한 강 씨는 입사 직후부터 선배 간호사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호소해왔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명목 아래 폭언, 따돌림, 모욕 등으로 길들이는 병원 내 악습을 가리킨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명목 아래 폭언, 따돌림, 모욕 등으로 길들이는 병원 내 악습을 가리킨다. 사진은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해당 보도를 보면, 강 씨는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한 선배로부터 "죽을 때까지 태울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씨의 어머니는 "근무가 끝난 뒤 방에서 그 얘기를 하며 엄청나게 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강 씨가 남긴 일기장에는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기에는 "인사를 안 받는다. 불리한 일이 생길까 안 받는 인사 열심히 했다", "하루하루 지옥 같다. 하지만 그만두면 월세를 못 낸다. 그 지옥으로 계속 뛰어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강 씨는 어머니에게 "내가 좀 더 열심히 하고 선배한테도 살갑게 굴고 일하면 좀 달라지겠지", "엄마 나 좀 더 참아볼게. 나 버틸래"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끝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4월 퇴사했다. 퇴사 이후 강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받았다. 다만 강 씨가 가해자로 지목한 3명 가운데 1명의 괴롭힘만 인정됐고, 병원 징계는 해당 1명에 대한 '훈계'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강 씨는 자신이 지목했던 이들이 모두 병원에서 그대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강 씨가 퇴사 이후에도 사건의 기억과 처리 결과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병원 측은 MBC에 "부서 이동을 제안했지만,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며 "노동부 시정지시 내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제도 시행 이후 약 8배 늘어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번 사건은 간호계의 고질적인 '태움' 문제가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2018년 태움으로 인한 간호사 사망 사건들이 잇따라 알려진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강화돼 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신고하면 찍힌다"는 두려움과 보복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20년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故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시민대책위원회' 간호사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공공데이터포털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 등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3년 1만1038건, 2024년 1만3601건, 2025년 1만6373건으로 증가했다. 2019년 제도 시행 첫해 2130건과 비교하면 6년 만에 약 8배 수준으로 늘어난 셈이다.
의료기관 내 괴롭힘 신고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2년 731건, 2023년 765건, 2024년 1128건으로 늘었다. 2024년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47.5% 증가한 수치다. 2025년 8월까지도 792건이 신고돼 이미 2023년 연간 신고 건수를 넘어섰다.
간호 직종, 최근 1년 내 인권침해 경험했다는 응답 절반 넘어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7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피해 유형은 폭언, 직장 내 괴롭힘 및 갑질 등이 다수를 차지했고, 가해자로는 선임 간호사와 의사, 환자 및 보호자가 함께 지목됐다.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7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아시아경제
원본보기 아이콘전문가들은 병원 조직의 폐쇄성, 강한 위계 문화, 인력 부족, 교대근무로 인한 과중한 업무 부담이 태움을 반복하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신입 간호사가 숙련도를 빠르게 높여야 하는 교육 과정에서 폭언과 모욕이 '교육'으로 포장되는 순간, 피해자는 문제 제기조차 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가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객관적 조사를 해야 하고, 피해자 보호 조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내부 조사 과정의 공정성,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신고 이후 불이익 방지, 실효성 있는 징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반복된다.
강 씨의 죽음 이후 누리꾼들은 "훈계로 끝날 일이었느냐", "피해자는 일을 그만뒀는데 가해자는 그대로 남는 구조가 문제"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간호계 안팎에서는 태움을 개인 간 갈등이 아닌 조직문화와 노동환경의 문제로 보고 병원 차원의 독립적 조사체계와 외부 감시, 인력 충원, 신고자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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