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 원유 선물 칼라(Collar)와 유사
그러나 반도체는 현물 시장 영향력 커
현물 떨어지면 재협상 압력 있을 수도

편집자주AI, 반도체, 통신, 바이오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너무나 생소한 기술 이야기를 쉽게 풀어 전해 드립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공개된 마이크론 실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16건의 '전략적 고객 합의(Strategic Custemer Agreement·SCA)'이었습니다. 오는 2030년까지 D램(DRAM) 반도체의 최저 가격 및 최대 가격을 설정해 불황 시 가격 급락 위험을 줄인 것이지요.


이를 두고 어쩌면 그동안 극심한 사이클로 악명 높았던 메모리 반도체를 '구조적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낙관적 관측도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마이크론의 SCA는 정말로 D램 가격을 구조적으로 바꿀 게임 체인저일까요. 사실 사이클을 심하게 타는 상품에 가격 상·하한을 두는 계약 방식은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산업에서 흔히 보이는 관행입니다. D램의 미래를 예상하려면, 석유 산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메모리 하방 리스크 막을까…마이크론의 D램 'SCA'


마이크론의 D램 반도체(왼쪽)와 석유. 마이크론, 픽사베이

마이크론의 D램 반도체(왼쪽)와 석유. 마이크론,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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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론이 체결한 16건의 SCA는 기존 장기 공급 계약보다도 구속력이 강한 형태의 계약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앞으로 마이크론은 3~5년 동안 고객사에 제공할 D램 물량과 가격을 사전에 합의했습니다. 핵심은 '가격 밴드'입니다. 즉, SCA는 D램의 최고가와 최저가를 설정했습니다. 마이크론 입장에선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어찌되든 상관없이 일정 가격 미만으로 값을 깎을 필요 없어진 겁니다.

이번 계약으로 확보한 물량 규모는 전체 D램 생산량의 20%, 낸드(NAND)의 30%이며, 전체 매출의 약 25%입니다. 또 '테이크 오어 페이(Take or pay)' 방식을 도입하여, 계약 이행을 위한 현금 예치금 및 금융 약정 220억달러까지 확보합니다. 이 금액은 마이크론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객과 비교해 D램 공급자인 마이크론이 계약상 우위에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을 만큼 관대한 조항입니다.


무엇보다도, 향후 수년간 D램의 가격이 일정 이하로 내려갈 수 없다는 점이 긍정적입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그동안 극심한 사이클로 악명 높았습니다. 가격이 높아지는 이른바 '슈퍼 사이클' 때는 영업익이 폭등했다가, 불황기가 오면 D램 생산 기업끼리 피 튀기는 '치킨 게임'을 벌이며 생존을 도모해야 했지요. SCA 방식이 업계에 널리 퍼진다면 D램을 사이클의 저주로부터 건져낼 수도 있는 셈입니다.


사이클 벗어나는 메모리? …전문가 "현물 하락하면 재협상 압력"


마이크론 미국 반도체 공장. 마이크론

마이크론 미국 반도체 공장. 마이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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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SCA는 D램을 사이클로부터 해방하기에 충분한 계약일까요. 사실 마이크론의 SCA는 이미 석유·가스 산업에선 흔한 관행입니다. 일명 '칼라(Collar) 전략'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원유 가격의 상한과 하한을 설정해, 고객 입장에선 급등 리스크를 막고 생산자 입장에선 급락 리스크를 제어하는 계약입니다. 원유 선물 시장에서 콜(특정 자산을 미리 살 수 있는 권리)과 풋(팔 수 있는 권리) 옵션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요.


전문가들에게도 SCA는 매우 익숙하다고 합니다. 헤지펀드 '에너지 그룹 캐피털' 소속 제오프 카렌 수석 정보분석가(CIO)는 아시아경제에 "마이크론과 D램 고객들이 체결한 계약은 본질적으로 칼라 전략과 다름 없다"고 답했습니다.


카렌 CIO는 "마이크론은 SCA의 가격 밴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만일 D램 현물(Spot ·시장 가격)이 가격 밴드 상단보다 위로 올라가면 고객들은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고, 반대로 가격 밴드 하단보다 아래로 내려가면 마이크론은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며 "원유 시장에선 매우 흔한 관행이다. 원유도 생산자, 고객 모두 리스크를 제어하기 위해 각자의 잠재적 이익을 일부 희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유 선물 시장의 칼라(Collar) 전략 예시. 가격이 지나치게 급등, 급락하는 사태를 제한하는 리스크 헤지(Hedge)의 일환이다. CME 그룹 홈페이지

원유 선물 시장의 칼라(Collar) 전략 예시. 가격이 지나치게 급등, 급락하는 사태를 제한하는 리스크 헤지(Hedge)의 일환이다. CME 그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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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이크론의 SCA와 원유 시장의 칼라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카렌 CIO는 "원유 구매자는 거래소에서 원유나 가스를 사고, 원유 가격은 다양한 투기 세력이 개입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원자재 선물 시장은 헤지펀드 등 다양한 금융 기관이 차익을 얻기 위해 참여하며, 이에 따라 단기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D램은 원유 선물 시장처럼 고도로 발달한 금융 시장은 아닙니다. 카렌 CIO는 "원유 생산자가 얼굴 없는 투기 세력과 가격을 협상한다면, 마이크론은 고객사와 1:1로 대면 거래를 한다"며 현물의 영향력이 강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그는 "현물이 SCA 협상 가격 하한보다 더 저렴해진다면 구글 등 고객은 마이크론에 재계약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SCA 만으로는 슈퍼 사이클의 하방 위험을 막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메모리, 구조적 변화 이어지려면 수급 관리 정교해져야"


SK하이닉스의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의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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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SCA는 고객들로부터 현금을 조기에 예치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향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꺾였을 때 D램 가격 하락 압력을 방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결국 D램이 기존 사이클을 넘어 새로운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인공지능(AI) 열풍이 지속될 수 있냐에 달려있을 겁니다. 현재 시장 조사 기관들은 대체로 내년 초까지 메모리 가격 급등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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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카운터포인트는 내년 상반기 전 세계 메모리 시장 규모가 2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며, 특히 AI에 필수적인 서버 메모리 비중은 57%로 확대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하반기부터는 공급 확대에 따른 가격 조정 가능성도 열어놨습니다. 카운터포인트는 "지금의 성장이 일시적 호황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교한 수급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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