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사금융" "집값 폭등 주범 주장은 궤변"…'전세소멸' 논란, 들여다보니[Why&Next]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초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꺼낸 '전세 소멸' 화두를 둘러싼 여진이 짙다.
전세대출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서민주거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보증해주면서 본격화됐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물리적 담보가 없는 전세대출은 공적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필요하다.
'전세 소멸' 공방…없어지나 없애나
李대통령 "정상화" 野 "정책참사"
임대인, 저금리에 월세 선호
전세사기 여파 주거불안 가중
'내집 사다리' 역할 놓고 논란
"일종의 사금융이죠. 특이한 금융기법입니다. 이게 지금 사라져가는 추세예요. (중략) 결국은 조금씩 사라져가지 않을까 싶어요."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초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꺼낸 '전세 소멸' 화두를 둘러싼 여진이 짙다. 전세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을 짚으면서 사회 초년생 등 청년층 주거 사다리가 무너진다는 우려와 함께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터라 공방은 정치권까지 옮겨붙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전세 소멸은 정상화가 아니라 정책 참사"라며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초래한 뼈아픈 결과이자, 서민 주거 안정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은 국내 전세대출 잔액이 올해 3월 기준 171조1000억원으로 현 정부 출범 당시와 비교해 2조4000억원가량 줄었는데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나 올랐다면서 "전세대출이 집값 폭등 주범이라는 주장은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전세, 왜 줄어드나
원인이 어떻든 간에 전세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건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데이터처 집계를 보면 전체 임차 가구 가운데 전세 비중은 2000년 65.7%에서 2020년 39.9%로 줄었다. 서울의 경우 같은 기간 71.7%에서 47.5%로 감소했다. 데이터처 통계는 5년마다 집계되는데 2025년 수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집계한 숫자를 보면 최근 신고된 주택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 비중은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전체 주택 임대차 거래 63만8547건 가운데 전세는 23만2604건으로 36.4% 정도다. 특히 빌라 등 비아파트의 경우 전세 비중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전세가 줄어드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전세의 수익구조는 보증금을 운용해 얻는 이자 혹은 투자 수익과 집을 사고팔면서 가격이 오른 만큼 얻는 자본이득의 합이다. 저금리 상황이 수십 년째 지속돼 임대인으로선 보증금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다양한 규제나 높은 세금으로 임차인 보증금으로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도 어려워졌다.
여기에 수년 전 불거진 전세사기로 임차 가구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서 임차인 입장에선 목돈을 맡기길 꺼리는 기류가 생겼다. 서울처럼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전세보증금도 덩달아 올라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한 상황도 생겼다. 대출을 일으키면 월별 고정지출이 생기는 만큼 차라리 월세를 택하는 집도 늘었다. 과거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전세대출로 연명한 전세
하지만 저성장·저금리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전세제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집을 장만하기엔 부족하고 월세 납입을 꺼리는 성향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보증금 규모는 커지고 있다. 전셋값이 올랐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전세의 수익구조 가운데 한 축인 보증금 운용수익은 보증금×수익률로 볼 수 있는데, 수익률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상황에서 보증금이 커지면 전세제도가 작동할 여건이 된다.
보증금을 키운 주된 요인으론 전세대출이 꼽힌다. 낮은 수익률에 2010년 전후로 집값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면서 매각 차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과거에 없던 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전세대출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서민주거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보증해주면서 본격화됐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물리적 담보가 없는 전세대출은 공적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필요하다. 초기 1억원이었던 한도는 2015년 5억원으로 늘었다. 주택도시기금이 출범하면서 정부가 직접 대출(버팀목 대출)을 알선한 것도 이때다. 은행 입장에선 저금리로 수익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 보증서를 담보로 쉽게 영업이 가능했다. 정부도 특별한 재정 투입 없이 서민주거안정을 챙긴다는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임차인도 대출 문턱이 낮아지니 계속 늘려갔고 임대인으로서도 수익률은 낮지만 보증금이 커지면서 전세를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2003년 이후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지수 추이. 2008년 들어 매맷값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인 반면 전셋값은 가파르게 뛴 적이 있다. 전세대출이 본격적으로 확장하던 시기와 겹친다. AI 생성 이미지
원본보기 아이콘주거불안 가중, 무엇을 해야 하나
전세가 과거 강제 저축기능을 하거나 실거주 전 부족한 자금으로 보완하면서 서민층 내집마련이라는 긍정적 역할을 해왔지만 대출 비중이 커진 최근 상황은 경기 변동성에 취약한 등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세 시장을 둘러싼 사회 인식이나 여건이 바뀐 데다, 전세사기나 보증금 미반환 같은 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이걸 노렸나" 패배한 게 오히려 좋아? 한국 32강 ...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지난 4월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전세 축소 흐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세가율을 매매가격의 일정 기준 이하로 묶어두거나 보증 비율을 제한하는 식의 직간접 규제, 민간 장기임대를 유도하기 위해 임대주택·사업 등록 의무화 제도 등을 제안했다. 백두진 서울시 부동산금융분석팀장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전세는 순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속되기 어렵다면서 전세대출의 분할 상환을 유도하거나 월세 대출 및 월세 세액공제 확대, 공공기관의 전세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