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한 KFC 할아버지? …왕년엔 라이벌과 총격전 벌인 풍운아 [맛있는 이야기]
치킨 프랜차이즈 KFC 설립한 샌더스 대령
대공황 세대…라이벌 업체와 다투며 가게 지켜
미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대가 KFC에는 유명한 마스코트가 있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흰 양복으로 유명한 KFC 창업주 샌더스 대령이다. 지금은 인자한 미소로 고객들을 반겨주지만, 사실 실제 샌더스 대령은 젊은 시절부터 전 미 대륙을 돌아다니며 온갖 거친 일을 도맡은 시대의 풍운아였다.
40대까지 美 전전하며 생활고…주유소 옆 식당에 터전
샌더스 대령의 본명은 할랜드 샌더스. 1890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부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끼니를 때우고 살았다.
그는 만 16세 당시 나이를 속여 미 육군 운전병으로 입대했다가 쫓겨난 일을 시작으로, 마차 도색공, 보험 판매사, 타이어 회사 직원, 심지어 램프를 다루는 일도 했다.
샌더스가 겨우 자리를 잡은 건 1930년대로, 이미 그의 나이는 40대에 접어들었다. 당시 미국에는 자동차와 화물 트럭이 오가기 시작했고, 도로 곳곳에 운전기사를 위한 주유소와 기사 식당이 들어섰다. 샌더스는 켄터키주의 셸 주유소 인근에 작은 식당을 차려, 운전기사들을 위해 햄, 스테이크, 튀긴 닭요리 등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KFC 특유의 '오리지널 치킨'도 이때 구색을 갖췄다. 샌더스는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를 꼼꼼히 기록해 노트로 만들 만큼 요리에 애정을 보였는데, 여러 향신료로 닭고기를 간한 다음 튀긴 치킨은 금세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라이벌 주유소와 총격전 벌이기도
그러나 샌더스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1930년대는 미국에 유례없는 경제 대공황이 닥친 시기였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하자 샌더스의 장사도 힘들어졌다.
당시 샌더스의 식당 맞은편에는 스탠더드 주유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샌더스는 해당 주유소 주인인 맷 스튜어트와 시비가 붙었다. 별안간 스튜어트는 품 안에서 총을 꺼내 격발했고, 샌더스 옆에 있던 직원 한 명이 총알을 맞고 숨졌다. 샌더스는 재빨리 총을 꺼내 반격, 스튜어트의 어깨를 맞춰 무력화했다. 훗날 두 사람은 재판을 받게 됐는데, 스튜어트는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18년형을 받았고 샌더스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피와 땀으로 가게를 지킨 덕분에 샌더스의 식당은 켄터키를 대표하는 명소로 성장했다. 샌더스는 지역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로 켄터키 시장으로부터 '대령'이라는 명예 칭호를 받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해 평생에 걸쳐 자신을 "샌더스 대령"이라며 소개했다고 한다.
다혈질적이고 꼼꼼한 성격…은퇴 후 봉사 활동에 힘써
샌더스는 평소 다혈질적이었으며, 음식 관리에도 철저한 꼼꼼한 성격이었다. 그는 KFC를 지점 600곳에 달하는 거대 업체로 성장시킨 뒤 전문 경영인에게 넘겼는데, 이후로도 여러 지점을 직접 방문하며 치킨 품질을 테스트할 정도였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대박 났네"…SK하이닉스도 찍었던 그 회사, 직원 ...
동시에 그에게는 자상한 일면도 있었다. KFC로 부를 일군 뒤로는 평생 빈민 구호와 봉사 활동에 힘썼다. 샌더스가 90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후 KFC 본사는 그의 정신을 본받고자 'KFC 재단'이라는 자선 단체를 설립했고, 현재까지 다양한 봉사 및 구호 활동에 힘쓰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