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주의 위기·소다자주의 필요"… 제주포럼서 전·현직 지도자 한 목소리로 우려
제21회 제주포럼에서 지정학적 긴장과 기술·공급망 무기화 등으로 인해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와 강대국 중심의 다자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현직 국가지도자들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과 이익 독점보다 중견국과 글로벌 사우스를 아우르는 '포용적 연대 체제'를 재구상해야 한다고 일제히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제주포럼 영상 축사를 통해 "인공지능, 무역, 기후를 비롯해 지금 세계가 직면한 도전들은 결코 한두 국가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문제 해결 역량이 있는 국가들이 서로 연대하고 유연한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때 기존 국제질서의 공백을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국가들의 연대는 분야별로 유엔과 건설적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개회사에서 "국경과 이념, 세대와 지역을 넘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틀이 필요하다"면서 "세계가 분열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면 제주는 협력의 시대를 열겠으며 세계가 갈등의 언어에 익숙해진다면 제주는 공존의 언어를 먼저 말하겠다"고 밝혔다.
안토니오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영상을 통해 "강대국들이 공동의 규범과 공통의 목표를 중심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왔던 국제질서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다자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더욱 긴밀히 연결되고 더욱 포용적이며 대표성을 갖춘 다자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타샤 피르츠 무사르 슬로베니아 대통령도 영상으로 국제협력과 다자기구에 대한 지지, 다자주의와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의 활용 그리고 빠르게 발전하는 신기술의 거버넌스 과정에서 지식의 힘의 활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수브라마냥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은 기조연설에서 "기득권을 가진 일부 강대국들은 경쟁력 약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국제 경제가 상생보다 제로섬 경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며 "경쟁력 왜곡과 시장 접근 제한으로 개도국들은 산업화할 기회와 역량을 제약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5가지 단계로 "국제 경제의 위험을 줄이고 생산 기지와 공급망을 다변화할 것, 주요국 간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할 것, 국제법과 국제 규범을 지킬 것,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더 많은 역량과 기회를 제공할 것, 개혁된 다자주의를 통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개회사에 이어 진행된 '분열의 세계, 협력의 재구상' 세계지도자 세션에서도 연사들은 강대국 중심일방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중견국 연대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가렛 에반스 전 호주 외교장관이 좌장을 맡은 해당 토론 세션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검버자브 잔당샤타르 전 몽골 총리, 필리프 뢰슬러 전 독일 부총리가 패널로 참석했다.
반 전 총장은 "미국은 가장 강력하고 자원이 풍부한 국가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국가도 혼자서 독자적으로 살 수 없다"며 미국의 국제기구 복귀를 강력히 촉구했다. 반 전 총장은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등이 참여하는 중견국 협의체 '믹타(MIKTA)'나 아세안, 아셈 등의 조화로운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에의 이란 공격을 국제법 위반 사례로 언급하며 "의지를 가진 중견국들의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일본, 호주, 인도네시아, 아세안 등이 연합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만 강대국 간 라이벌 경쟁이 선을 넘지 않도록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잔당샤타르 전 몽골 총리는 "지정학적 경쟁으로 글로벌 합의가 마비될 때는 5개에서 10개 국가가 모여 단일 문제를 다루는 소다자주의로 가야 한다"며 청정에너지, 핵심 광물, AI 거버넌스 등의 구체적 협력과 공급망 다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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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외교부와 제주특별자치도, 국제평화재단, 동아시아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제주포럼은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 외교·안보 포럼으로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전날부터 26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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