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서울국제도서전 개막
코엑스 가득 메운 줄과 손끝, 책의 의미를 다시 묻다

AI는 기다리지 않는다. 질문을 넣으면 곧장 답을 뱉는다.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의 독자들은 정반대였다. A홀과 B1홀 앞에서 줄의 끝을 찾고, 입장 팔찌를 받고, 사인회 시간을 확인하고, 강연 예약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누군가는 연차를 냈고, 누군가는 점심시간을 쪼갰고, 누군가는 올해도 어김없이 첫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오늘 여기 오려고 연차를 냈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건 쉽지만, 도서전에서는 내가 고를 생각조차 못 했던 책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현장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김서인씨는 말했다.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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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인간선언 Homo Duduri'다. AI가 빠르게 답을 내놓는 시대에 다시 질문하는 인간을 말한다. 개막식 환영사와 주제 선언문은 인간다움, 사유, 상상력, 책의 가치를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보인 것은 추상어가 아니었다. 줄 선 몸, 책등을 훑는 손, 한정판을 집었다 내려놓는 손, 굿즈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여는 손이었다. 인간은 이날 선언보다 먼저 움직였다.


제68회 서울국제도서전은 28일까지 코엑스 A홀과 B1홀에서 열린다. 국내외 18개국 538개 출판사와 관련 단체가 참여하고, 강연·세미나·전시·사인회 등 415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약 15만명이 찾을 것으로 출판계는 보고 있다. 첫날 오전부터 티켓 부스 주변과 입구 통로는 붐볐다. 도서전 홈페이지도 현장 대기줄과 입장 지연 가능성을 안내하고 있다.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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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독자들이 책만 보러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책이 중심이다. 일반 서점에서 보기 어려운 신간, 도서전 한정판, 작가 사인회, 출판사별 큐레이션은 여전히 가장 강한 유인이다. 그러나 올해 현장의 열기는 책을 둘러싼 경험으로 넓어졌다. 독서 플랫폼, 온라인 서점, 식품·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부스를 꾸몄고, 독자는 책을 읽기보다 먼저 체험했다. 음성을 읽고, 바코드를 찍고, 집처럼 꾸민 공간을 통과하고, 완주 메달처럼 굿즈를 받았다. 책은 종이 위에만 있지 않았다. 책은 줄, 사진, 체험, 소비, 인증으로 번졌다.


그래서 올해 도서전의 질문은 조금 더 복잡해졌다. 'AI 시대에도 책이 중요한가.' 이 질문만으로는 현장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에 가깝다. AI가 글을 만들고 요약하고 추천하는 시대에, 독자는 왜 굳이 코엑스까지 와서 책을 만지고, 줄을 서고, 작가를 기다리는가.

답은 단순했다. 화면은 빠르지만, 현장은 느리다. 검색은 정확하지만, 우연은 적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좁히지만, 도서전은 취향을 어지럽힌다. 한 출판사의 작은 부스 앞에서 멈춰 서는 일, 표지 때문에 책을 들었다가 목차 때문에 내려놓지 못하는 일, 옆 사람이 고른 책을 힐끗 보고 다른 책으로 손을 뻗는 일은 아직 자동화되지 않았다. 독자가 도서전에 오는 이유는 책을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책과 만나는 방식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소설가 정보라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 주제강연 '글쓴이와 옮긴이'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가 정보라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 주제강연 '글쓴이와 옮긴이'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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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빈국 프랑스관도 그 흐름 안에 놓였다. 올해는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프랑스 문학과 예술, 출판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스칼 브뤼크네르 등 프랑스 작가들이 참여하고, 프랑스관은 다수의 도서와 문화 프로그램을 앞세웠다. 도서전의 국제성은 국가관의 규모보다 독자가 낯선 언어 앞에서 멈추는 순간에 더 선명했다. 읽지 못하는 책 앞에서도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판형을 만지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몰리는 것은 도서전의 힘이지만, 동시에 숙제이기도 했다. 지난해 전체 입장권 매진 이후 불거진 수용 문제는 올해도 배경으로 남았다. "독자가 이렇게 많이 오는 건 반갑지만, 부스 공간과 동선은 매년 고민이다. 큰 출판사만 돋보이는 행사가 되면 작은 출판사는 독자를 만나기 어렵다." 한 중소 출판사 관계자는 말했다.

공간 부족, 대형 출판사 중심의 주목도 쏠림, 도서전의 공공성과 상업성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25일부터 노들섬에서 열리는 '서울제대로도서전'은 "여유 있게, 오래, 가깝게"를 내걸고 출판사·책방·작가 51곳이 참여하는 책 장터와 독자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코엑스 안의 열기만으로 도서전 전체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혜경 여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김혜경 여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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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첫날 현장에서 분명했던 것은 하나다. 책의 위기는 책의 부재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책 앞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과 달리, 독자들은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다만 그들이 기다린 것은 종이 묶음만은 아니었다. 책을 고르는 시간, 작가를 만나는 시간, 같은 취향의 사람들 속에 섞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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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도서전은 '인간선언'을 내걸었다. 선언은 대개 무대 위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날의 선언은 무대 아래에 더 많았다. 손에 들린 에코백, 구겨진 입장 팔찌, 품절 안내문 앞에서 돌아서는 표정, 다음 강연 시간을 확인하는 휴대전화 화면에 있었다. AI는 답을 냈고, 독자는 줄을 섰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은 28일까지 이어진다. 폐막일인 28일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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