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산업, 미래설계자들]두산 가스터빈 20년 뚝심의 결실 "기술 자립으로 AI전력시대 선점"
(8)이상언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 BG GT설계 담당(상무)
2006년 초기 개발부터 참여
일본 기업 압박에도
박지원 회장 1兆 전폭적 지원
에너지 안보 확보 역사적 의미
친환경 연료시장 선점도 속도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은 항공기 제트엔진보다 정밀한 기술을 요구해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린다. 1500도가 넘는 연소가스를 견뎌내며 초고온·초고압을 이겨내야 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원천 기술 없는 제조업체에 불과했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 close 증권정보 034020 KOSPI 현재가 89,600 전일대비 1,000 등락률 -1.10% 거래량 1,113,830 전일가 90,600 2026.06.25 10:43 기준 관련기사 대미 투자로 주목받는 SMR, 수혜주는[클릭 e종목] 코스피, 9100선 마감…SK하이닉스 '대장주' 등극 한국, 500조 미국 투자 시작…수혜받을 주식은 [주末머니] 가 2019년 대형 가스터빈을 국내 기술로 온전히 구현해내면서 글로벌 발전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GE, 지멘스, 미쓰비시중공업(MHI) 등 글로벌 3사가 독주하던 무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완전한 국산 자체 기술을 보유하게 된 두산은 지난해 데이터센터 주기기로 미국 시장에 첫 수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고, 현재까지 미국 12대 포함 총 23대의 계약을 성사하며 순항 중이다.
2006년 초기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두산의 'K-가스터빈' 탄생과 사업화의 주역인 이상언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 BG GT설계 담당(상무)는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두산 타워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를 하고 "초고난도 분야인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독자 기술로 구현했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해외 원제작사(OEM)와의 경쟁 속에서 에너지 안보를 자력으로 확보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자 기술이 없으면 국가 전력 수급 자체를 해외 기업의 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 상무는 "해외 OEM사들은 가스터빈에 문제가 생겨 플랜트 전체가 마비될 위기에 처해도 계약서상 배상액 상한선(통상 계약금의 10%)만 지불하고 빠져나가기 일쑤였다"며 "국내에 160여기 외산 가스터빈이 돌고 있지만, 유지보수를 위한 기술 전문가 요청이나 부품 교체를 요구하면 코로나19나 화이트리스트 등을 핑계 대며 보내주지 않아 발전소를 멈추어야 하는 위기도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산은 2013년 이탈리아의 원천기술 보유 기업 안살도 인수를 추진했으나, 국가 기술이 동양의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을 꺼린 현지 정치권의 반대로 막판에 무산됐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국책과제로 자체 개발을 본격화하자, 당시 면허 생산 계약 관계였던 일본 미쓰비시 측은 최신 모델 라이선스 계약을 제안하며 두산의 독자 개발 노선을 저지하려 압박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가스터빈 사업을 지켜낸 버팀목은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뚝심이었다. 두산은 가스터빈 개발에 총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특히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와 맞물려 매출이 급감하고 산업은행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을 때는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문 경영인 체제였다면 단기 실적 압박과 구조조정 속에서 가스터빈 개발은 당장 폐기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다.
이 상무는 "당시 연구·개발 예산을 집행하면서 두산에서 저만큼 돈을 많이 써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채권단 시절에도 박 회장님은 가스터빈 예산만큼은 단 한 푼도 깎지 않고 전액 승인해줬으며, 관련 개발 인력들이 개발에 집중하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해줬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회장님의 결단과 중단 없는 투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호황기를 제대로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터빈 기술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으나, 수십 년의 레퍼런스를 가진 글로벌 3사와의 객관적인 성능 격차는 존재한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430~440메가와트(㎿)급 최신 모델을 팔 때, 두산의 주력 모델은 380㎿급이다. 두산은 이러한 후발 주자의 약점을 압도적인 서비스 차별화로 극복하고 있다. 이 상무는 "외산 업체들은 정비할 때 발전소 내에 텐트를 치고 기술 정보를 철저히 가린 채 몇십 일씩 작업을 한 뒤, 수백억 원짜리 청구서와 리포트만 전달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 운전 상태와 개선 내용 등을 발전사와 투명하게 공유한다. 이 상무는 "문제가 발생하면 12시간 내 실무자 파견, 48시간 내 임원급 파견을 원칙으로 삼고, 380㎿ 모델을 국내 표준형으로 구축해 발전 공기업 어디서든 부품이 100% 호환되도록 로지스틱스 체계를 갖췄다"면서 "24시간 내 긴급 대응이 가능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 시장 역시 2017년 인수한 휴스턴 소재 정비 전문 업체(DTS)를 전초기지로 삼아 밀착 케어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가스터빈의 미래인 친환경 청정 연료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파수가 다른 해외 시장(50㎐) 진출을 위해 기어박스만 바꾸면 50㎐와 60㎐지역에서 모두 쓸 수 있는 중형 모델 'DGT-100(100㎿급)'을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으로 개발 중이다. 특히 미래형 모델은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수소 연료를 100% 태울 수 있는 '수소 전소 가스터빈'을 목표로 설계됐다. 수소는 천연가스와 비교해 화염 속도가 8배나 빨라 노즐이 녹아내리는 등 기술적 난도가 극도로 높지만, 두산은 고도의 연소 기술과 수명 연장을 위한 고온 소재 및 정밀 코팅 기술로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 중동 등 액체 연료 수요가 많은 시장을 겨냥해 가스·수소·액체연료 등 고객의 연료 다변화 요구에 대응 가능한 '멀티퓨얼(Multi-Fuel) 가스터빈'을 2029년까지 개발해 실증 운전에 착수할 계획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주식 팔 줄 몰라" 2만원대 SK하닉 매수한 김문수...
이 상무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가스터빈 분야 세계 시장 톱티어가 되는 날을 꿈꾼다. 그는 "가스터빈의 수명은 대략 20년이며 고온 환경에서 운전되는 터빈의 경우 설계수명인 5만시간(5~6년)마다 신품으로 교체를 해줘야 한다"며 "팀원들과 밤낮없이 만든 터빈이 수명을 다하기 전쯤 부품 교체를 위해 케이싱을 분해했을 때, '두산 가스터빈은 믿을 수 있다'는 현장의 평가를 받으며 은퇴하는 것이 엔지니어로서 꿈"이라고 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