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前 연준의장 별세…세계 경제 '마에스트로'의 빛과 그림자(종합)
美 호황에 기여한 Fed 의장
글로벌 금융위기 책임론도 존재
20세기 말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Fed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그린스펀 전 의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통화정책과 경제 이론에 대한 그의 기여는 연준과 경제학계, 미국 사회에 지속적인 족적을 남겼다"고 밝혔다. 외신들에 따르면 그는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워싱턴DC 자택에서 숨졌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의해 Fed 의장에 지명된 뒤 2006년까지 19년 가까이 미국 중앙은행을 이끌었다. 레이건,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공화·민주 양당 4개 행정부를 거치며 세계 경제의 가장 강력한 정책 결정권자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그의 임기는 취임 직후부터 시험대였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당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22% 넘게 폭락하자 그린스펀은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히며 시장 불안을 진정시켰다. 이후 199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 낮은 인플레이션, 생산성 개선, 실업률 하락이 이어지면서 그는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린스펀의 영향력은 통화정책 영역을 넘어섰다. 그의 한마디는 세계 증시와 채권시장, 달러 흐름을 흔들었다. 의회 증언과 연설에서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나치게 명확한 신호가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회의장에 들고 들어가는 서류가방의 두께까지 정책 변화를 암시한다는 이른바 '서류가방 지표'가 회자될 정도였다.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한때 줄리어드 음악원에 진학해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공부했다. 10대 시절에는 순회 재즈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월가에서 경제 컨설턴트로 명성을 쌓았다. 공화당 경제 자문역으로 워싱턴 정계에 진입한 뒤 제럴드 포드 행정부 경제자문위원장을 거쳐 연준 수장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재평가됐다. FT는 그린스펀이 2006년 Fed를 떠난 지 불과 2년 만에 미국이 대규모 금융위기에 빠지면서, 그의 통화정책과 규제 철학이 현대 금융사 최악의 붐앤버스트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비판론자들은 Fed가 2000년대 초반 금리를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서 오래 유지했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강한 감독 필요성을 외면했다고 지적한다. 그린스펀 본인도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신봉해온 자유시장 철학에 "결함"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특히 그가 이끌던 Fed는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와 9·11 테러 이후 기준금리를 1%까지 낮췄다. 당시에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로 평가됐지만, 이후 비판론자들은 장기간의 저금리가 주택시장 과열과 신용 팽창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또 파생상품과 모기지 시장에 대한 느슨한 감독은 금융권의 과도한 위험 추구를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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