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인터뷰
비영리 대안공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장까지
"좋은 학교보다 중요한 건 많이 보고 경험하는 것"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예체능 교육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삼남매에게 무용과 피아노, 그림 등을 배우게 하며 각자의 소질을 찾도록 이끌었다. 언니는 화가가 됐고, 그는 언니의 영향을 받아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큐레이터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에 올랐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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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이야기다. 비디오아트의 대가 고(故) 백남준 작가의 조언을 계기로 미국에서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경험한 그는 귀국 후 국내 비영리 대안공간의 토대를 마련하고 젊은 작가 지원에 앞장서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취임 이후에는 '모두의 미술관'을 기치로 관람객 346만명 시대를 열었고, 올해 100억원이 넘는 추가 예산 확보와 세계적 거장 작품 기증 유치를 이끌어내며 미술관의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세계 미술계와 한국 현대미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온 여성 리더 김 관장을 최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났다.

- 큐레이터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에까지 올랐다.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을 꼽는다면.

▲단연코 백남준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백남준 선생 밑에서 일을 많이 했다. 선생님은 "서구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해외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첫 아이를 유산한 직후라 장기간 유학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인턴십이라도 해보라며 직접 추천서를 써주셨다. 덕분에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디아 파운데이션에서 인턴십을 하며 세계 미술계와 비영리 예술 지원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사루비아다방 설립과 젊은 작가 지원 활동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저를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됐다.


- 문화예술계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분야로 평가받지만, 주요 기관의 리더십에서는 여성 비율이 여전히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 리더로서 느낀 기회와 한계는 무엇인지.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속에서 성장했고, 저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런 시선을 내면화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미술 분야에서는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큰 강점이 된다. 작가와 작품, 관람객을 연결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에는 섬세한 이해와 소통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술계에서 여성들의 활약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들도 모두 여성이고,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역시 모두 여성이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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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과 K콘텐츠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미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대중적 관심이 낮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K팝과 K콘텐츠에 비해 미술은 성과가 나타나는 속도는 느리지만, 한 번 자리 잡으면 영향력과 지속성이 훨씬 크다. 미국도 냉전 시기부터 미술관과 대학, 기업 후원을 통해 예술가와 담론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문화 주도권을 확보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대미술 역시 잠재력이 충분하다. 해외 미술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전략적 투자와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적 도약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지금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이미 시작됐으며, 이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키워나가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관장 취임 이후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변화는 무엇이었으며,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모두의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관람객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어려운 현대미술을 보다 쉽게 풀어내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 전시 설명과 해설을 관람객 눈높이에 맞추고 접근성을 높인 결과 지난해 관람객 수가 346만 명을 넘어섰다. 또한 해외 학자와 큐레이터를 초청하는 리서치 펠로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국 현대미술 담론 형성에도 힘썼다. 기업 및 재단과 협력해 제임스 터렐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확보했고, 재임 기간 100억 원 이상의 추가 예산을 확보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후배 여성 큐레이터와 문화예술 분야 진출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보다 얼마나 많이 보고 경험했는지가 중요하다. 시각예술은 결국 눈을 훈련하는 작업이다. 작품을 많이 보고 끊임없이 자신의 안목을 검증해야 한다. 또한 소통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큐레이터는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고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 왜 이 작품을 선택했고 왜 이 위치에 전시했는지 관람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작가의 의도와 관람객의 경험을 연결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들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자기 검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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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이 유리천장과 경력 단절 등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관장님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진정성과 일관성이다. 이는 제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방향성을 유지한다. 경력 단절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진정성과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저 역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후원 작가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사람에게 상처받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사회와 세계 미술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과 세계 미술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현재 세계적인 작가들이 직접 찾아와 전시를 제안하고 있으며, 아시아 진출의 시작점으로 한국을 고려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과의 협력도 진행 중이며, MoMA 역시 한국 현대미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 전시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흐름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이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할 시기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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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퇴임을 앞두고 있는데, 개인적 목표가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지난 3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다시 캔 파운데이션(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예술재단)을 통해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일에 힘을 쏟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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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여성 리더들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은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의 '인생의 의미'다. 관계와 결핍, 균형, 꿈 등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 예술 역시 결국 인간의 삶과 고민, 관계를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연극인이 창작의 벽에 부딪혔을 때 미술관에 와서 작품을 보고 해답을 찾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람객들도 저마다의 필요를 안고 미술관을 찾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삶과 예술을 연결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안내서라고 생각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58년생으로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미술사학 석사,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사루비아다방 디렉터,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등을 거쳐 2023년 제22대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했다. 젊은 작가 지원과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에 힘써온 대표적인 문화예술계 리더로 평가받는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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