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
"좋은 화랑은 작가를 발굴·개발·지원·육성하는 곳"
수원은 새 컬렉터, 키아프는 해외 진출 토대 시험대
"미술진흥법, 화랑 피해 없도록 연착륙시켜야"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화랑 이야기를 하다 1977년의 가족회의로 돌아갔다. 어머니 김창실 선화랑 창업자가 화랑을 열겠다고 했을 때, 서울대에 갓 들어간 아들은 반대했다.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이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이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미술 장사해서 장사꾼 소리나 듣지, 뭐 존경받는다고 합니까.' 그랬더니 어머니가 정색을 하시더라고요. '화랑은 그런 거 하는 데가 아니야. 장사꾼이 아니야. 문화유산을 남길 사람을 발굴해서 키워서 후대에 남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때 처음 화랑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그냥 집안의 훈계가 아니었다. 김창실 창업자는 30대 중반 손에 끼고 있던 다이아반지를 빼 겸재 정선의 그림을 샀고, 20대 중반 약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도상봉의 '라일락'을 사 선화랑 제1호 소장품으로 삼았다. 좋아서 사는 일과 값을 치르고 책임지는 일 사이, 그에게 화랑이 있었다.

판사와 변호사를 거친 아들은 지금 한국화랑협회장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미술진흥법, 아트페어 부스비, 거래 내역 제출, 추급권을 말했다. 법조인처럼 조항을 따지고, 협회장처럼 비용을 따졌다. 그런데 화랑을 설명하는 첫 문장은 법전이 아니라 어머니의 반박에서 나왔다.


故 김창실 선화랑 창업자.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어머니 김 창업자의 말을 통해 "화랑은 장사꾼이 아니라 작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곳"이라는 화랑관을 설명했다. 연합뉴스

故 김창실 선화랑 창업자.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어머니 김 창업자의 말을 통해 "화랑은 장사꾼이 아니라 작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곳"이라는 화랑관을 설명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저희는 그림을 잘 사고파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가를 발굴해서 육성하는 역할이 화랑업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운 말만으로 전시는 열리지 않는다. 이 회장도 그 지점을 피하지 않았다. "작가를 발굴해서 개발, 지원, 육성하는 게 제일 훌륭한 갤러리죠. 그런데 그것만 해서는 장사가 안되면 생존을 못하니까요. 자기가 발굴한 작가가 잘 성장해서 수입하고도 연결이 되면 좋은데, 그렇게 될 때까지는 굉장히 힘들죠."


그가 한국 미술시장의 약점으로 꼽은 말은 '영세성'이었다. 전시를 열고, 작품을 옮기고, 아트페어에 나가면 비용부터 든다. 안 팔리면 손실이다. 이미 유명한 작가는 큰 화랑 전속이다. 아직 이름이 덜 알려진 작가를 먼저 전시장에 펼치는 곳은 작은 화랑이다. 시장이 식으면 그곳부터 숨이 가빠진다.


수원 화랑미술제는 그 숨을 서울 바깥에서 이어보려는 자리다. 올해 3회째인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25일부터 28일까지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이 회장은 수원을 "수도권이지만 서울은 아니다"고 했다. 그가 본 경기 남부는 돈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문제는 구매 습관이었다.


"돈이 있어야 그림을 사죠. 돈 없으면 못 사거든요. 경기 남부에 IT 기반 기업들이 있고,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컬렉터층이 확대되는 거죠."


화랑미술제 수원 2024 현장. 수원시

화랑미술제 수원 2024 현장. 수원시

원본보기 아이콘

올해는 사람이 얼마나 왔느냐보다, 누가 실제로 샀느냐가 화두다. "몇십만 원대, 몇백만 원 초반부는 판매가 되는데, 몇천만 원대가 되면 잘 안 되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금년은 구매도 되지 않겠느냐 기대하고 있습니다."


키아프 서울도 같은 질문 앞에 있다. 프리즈 서울은 해외 컬렉터를 서울로 불러 모았다. 문제는 그들이 한국 작가 앞에서 멈추는가다. 이 회장은 키아프의 역할을 이렇게 말했다.


"키아프의 굉장히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의 기반이 돼 주는 겁니다. 해외하고 유입이 많이 되고, 서로 교류가 많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아트라는 말도 여기서 가벼워지지 않는다. 해외에서 한국 작가 이름이 불리는 일과 국내 화랑이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일은 아직 같은 일이 아니다. 이 회장은 이를 "해외 컬렉터의 국내 유입, 갤러리의 지속 가능한 거래 기반, 작가의 장기 활동 구조"의 문제로 봤다.


미술진흥법은 그 구조를 흔들 수도, 받칠 수도 있다. 그는 임기 중 가장 신경 쓰는 사안으로 법의 '연착륙'을 꼽았다. 특히 재판매보상청구권, 이른바 추급권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 내용이 없는 거예요. 어떤 대상이 되는 거래가 어디냐, 금액이 얼마냐, 보상금 비율이 얼마냐, 구체적 내용은 다 위임돼 있어요. 금년부터 내년까지 1년 동안은 화랑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연착륙해서 우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죠."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이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이 서울 종로구 협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그는 작가 권익 보호의 취지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거래가 위축될 가능성을 걱정했다. "추급권을 하려면 거래가 뭔지를 다 파악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화랑하고 경매 쪽에는 '너희 거래한 내역 다 내놔' 할 수 있는 거죠."


컬렉터가 노출을 꺼려 화랑 거래를 피하면, 피해는 이미 가격이 오른 작가보다 첫 전시와 첫 구매자가 필요한 작가에게 먼저 갈 수 있다. 작가를 보호한다는 제도가 오히려 작가를 처음 시장에 들이는 문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로 번진다.


어머니는 화랑이 장사꾼이 아니라고 했다. 협회장이 된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게 가장 큰 사명입니다. 그런데 장사가 안되면 생존을 못합니다."

AD

화랑미술제 수원은 새 구매자를 찾는 자리다. 키아프는 한국 작가를 해외 컬렉터 앞에 놓는 자리다. 미술진흥법은 그 거래를 겁먹게 하지 않고 작가를 보호할 수 있는지의 시험대다. 화랑이 장사꾼이 아니라는 말은 선의로 증명되지 않는다. 다음 전시와 다음 거래에서 증명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