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가면 쓴 우아한 도살장, 글로컬·라이즈
시장 뒤에 숨은 교육부, 비리 방치가 만든 폐교
피해 청산서는 오롯이 학생과 지역의 '몫'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대학가의 서늘한 괴담은 이제 비유를 넘어 참담한 현실이 됐다.


지난 2012년 명신대학교와 성화대학의 동시 퇴출을 시작으로 2018년 서남대학교, 2020년 동부산대학교, 2022년 한려대학교에 이어 광양 유일의 고등교육기관이었던 광양보건대학교까지 결국 같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지방 대학들이 고사 직전에 내몰린 가운데, 교육부는 수천억 원의 예산을 미끼로 던진 '글로컬대학30' 사업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를 구원투수처럼 내세우고 있다.


이준경 호남취재본부 부장

이준경 호남취재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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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화려한 이름의 정책들을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위한 혁신"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최근 폐교됐거나 폐교 문턱에 선 대학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이 비극의 책임이 오롯이 학령인구 감소나 교육부의 설계 실수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벼랑 끝에 몰린 와중에도 곪아 터진 지방 사학들의 만성적인 비리와 도덕적 해이는 교육부가 들이댄 구조조정 칼날에 완벽한 명분을 쥐여줬다.


'자율적 혁신' 이름의 강요된 구조조정…교비는 쌈짓돈, 사학들의 자멸 공식


글로컬대학 사업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바로 '통합'과 '정원 감축'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스스로 몸집을 줄이고 다른 대학과 합쳐야만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이를 대학의 "자율적 선택"이라고 항변하지만, 돈줄이 끊기면 당장 내일 문을 닫아야 하는 지방대들에 이는 선택이 아닌 협박에 가깝다.


과거 1990년대 무분별하게 대학 설립을 인가해주며 부실을 키웠던 교육부는, 2010년대 들어 평가 등급을 매겨 대학들을 강제 폐교시키며 "정부 주도의 칼질"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이제는 교묘하게 방식을 바꿨다. 거액의 지원금을 쥐고 대학들이 알아서 서로를 집어삼키거나 스스로 정원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피를 묻히는 건 더 이상 교육부가 아니라, 생존 경쟁에 내몰린 대학들 자신이다.


지방 사학들이 무너진 과정을 들여다보면, 비단 특정 재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사학 전반에 걸쳐 만연했던 고질적인 부패 생태계의 민낯이 드러난다. 대학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사학재단들은 '학교 살리기'보다 '내 밥그릇 지키기'와 '구조적 부정'에 여념이 없었다.


2012년 함께 퇴출당한 순천 명신대학교와 강진 성화대학은 사학 비리의 종합선물세트였다. 명신대는 설립자 일가의 수십억 원 교비 횡령을 시작으로, 출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고 성적을 위조해 졸업장을 남발했다. 성화대학 역시 설립자가 교비 60억여 원을 횡령하고, 교수들에게 월급을 준 뒤 기부금 명목으로 다시 회수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러한 부패의 관성은 최근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동부산대는 재단 이사장과 총장의 수십억 원대 횡령으로 제정이 파탄 났고, 광양보건대와 한려대 역시 설립자의 1,000억원대 횡령 여파로 '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치명적인 낙인이 찍혔다.


지난 20여 년간 폐교 수순을 밟은 대학 중 70% 이상이 사학비리가 뇌관이었다. 학생들의 교육에 쓰여야 할 교비는 재단 일가의 부동산 투기나 비자금 조성에 쓰였고, 교직원 임금 체불은 예사였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사학의 탐욕이 대학의 기초 체력을 완전히 갉아먹은 셈이다.


시장 논리 뒤에 숨은 교육부 '꼬리 자르기'…청산서는 학생·지역의 몫


문제는 교육부가 고안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시장 논리가 비리 사학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정상적인 지역 대학들까지 '도태'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의 사학비리 근절 의지 역시 낙제점에 가깝다. 종합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학이 수두룩하고, 문제가 터진 뒤에야 사후 약방문식 조처를 내리는 관행은 3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강제로 문을 닫게 하면 교육부의 관리 부실 책임론이 불거지지만, 비리를 방치하다 대학이 스스로 무너지면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자업자득"으로 돌리기 쉽다. 결국 RISE와 글로컬이라는 세련된 정책은, 교육부가 져야 할 책임과 사학의 부패상을 '시장 경쟁'이라는 거름망 뒤로 숨겨버리는 꼬리 자르기 장치일 뿐이다.


정부가 혁신을 외치고 사학재단이 비리로 연명하는 사이, 폐교의 가혹한 대가는 늘 현장의 약자들이 치렀다. 학생들은 하루아침에 모교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빼돌려진 교비의 공백은 낡은 실험 장비와 부실한 강의로 학생들에게 전가됐다.


교직원들은 수년 치 임금을 떼인 채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다. 나아가 대학이 무너지면 학교 주변 상권의 몰락, 청년 인구의 유출, 지역 경제 붕괴라는 도미노가 시작된다. 남원, 강진, 순천에 이어 광양 역시 이 피할 수 없는 청산서를 떠안게 됐다.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낸 교육부의 무책임과 지방 사학의 도덕적 해이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판을 잘못 짠 설계자는 서울에서 또 다른 평가지표를 만들고 있고, 배를 불린 사학 경영진은 꼬리를 자르고 물러났다. 그 사이에 낀 지역 사회의 비명에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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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폐교 명단에 올라갈 대학의 시계는, 비리와 방관의 틈바구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호남취재본부 이준경 기자 lejkg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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