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 Story]②"개발·허가 넘어도 수가 벽…기업이 무너진다"
김용욱 강남세브란스병원장 인터뷰②
AI 의료기기·디지털치료제 "보상체계 마련 시급"
"의료데이터·연구인력 규제도 산업화 발목"
"개발도 되고 인허가도 났는데 수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병원도 그 기술을 처방하기 어렵고, 개발한 기업은 매출을 못 내 무너집니다."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 민간위원 27명은 대부분 의대 교수이거나 기업인이다. 현직 병원장은 김용욱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이 유일하다. 연구자도 기업인도 아닌 병원 운영자가 그 자리에 필요한 이유를 묻자 김 원장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 얘기를 먼저 꺼냈다. 연구 성과가 임상을 거쳐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구간에서 자금과 제도의 공백으로 기술이 사장되는 현상이다. 김 원장은 병원장을 이 구간의 '해결사'에 빗댔다. 신기술이 의료 현장에 도입될 때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 효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병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데스밸리를 가장 깊게 겪는 곳은 의료 인공지능(AI) 솔루션과 디지털 치료제(DTx) 기업이다. 이들은 신약처럼 글로벌 기술수출로 승부하기보다 국내 의료기관에 제품을 납품하고 건강보험 수가로 매출을 일으키는 구조여서 보상체계가 곧 생존선이 된다. 데스밸리를 가르는 분기점이 바로 수가다. 김 원장은 "수가는 병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뛰어난 AI·디지털 기술도 의료 현장에서 써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행 보상체계에서는 기존 행위료에 묶이거나 수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병원이 도입할수록 손해를 보거나 환자에게 비용을 전가해야 하는 구조다. 김 원장은 "보상체계 개선이 늦어지면 국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도 전에 자금난으로 데스밸리를 넘지 못한다"며 "적절한 보상체계가 빠르게 자리 잡아야 기업이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추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의 척박한 재무 구조도 신기술 도입을 가로막는다. 대학병원의 진료 이익률은 1%에 못 미친다. 100억원을 벌어도 손에 남는 건 1억원이 안 된다. 진료 수익만으로는 재투자도, 연구도 빠듯한 상황에서 수가도 없는 기술을 떠안기는 어렵다. 그런데 기업 쪽 사정은 더 급하다. 바이오·헬스케어로 가야 할 투자 자금마저 최근 반도체로 쏠리면서 기술을 끝까지 끌고 갈 동력이 마르고 있다. 김 원장은 "좋은 기술이 개발돼도 결국 사장되고 폐업하는 기업도 많다"며 "병원이 이런 기술을 빨리 도입해 환자 치료에 쓰는 것이 곧 산업을 키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인력도 발목…"연구와 산업 잇는 제도 필요"
수가와 함께 김 원장이 짚은 또 다른 병목은 의료 데이터다. 데이터는 AI 신약개발과 정밀의료의 원료이지만 활용을 둘러싼 책임 소재가 모호해 산업화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해 12월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유출 시 과징금 상한이 매출의 3%에서 10%로 올랐다. 김 원장은 "한 번 걸리면 회사가 망하는 수준이라 데이터를 쓰려 해도 내부적으로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익명화가 제대로 됐는지, 사후 책임은 누가 지는지를 두고 심의를 여러 차례 거쳐야 한다. 데이터를 보유한 병원과 이를 활용할 기업 사이에서 책임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기관 운영자의 몫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연구 인력 문제도 산업화의 길목을 막는다. 김 원장은 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려면 연구하는 의사, 즉 의사과학자(MD-PhD)가 임상과 연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연세대의료원은 의사과학자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길러낸 곳으로 그 수가 약 12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이 현장에 들어오면 연구에만 매달릴 수 없다. 진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낮에 진료를 보고 밤에 연구하는 주경야독 구조"라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보상 제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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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차원의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연세대의료원은 지난해부터 교수 평가 지표를 손봤다. 논문 중심이던 평가에 창업·특허·기술이전 성과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연구 성과를 산업으로 연결하도록 유인을 바꾼 것이다. 아직 시행 1년이 채 되지 않은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평가는 여전히 진료 환자 수와 중증도 중심이다. 연구 역량을 강화해도 평가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고 병원 운영은 진료 수익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김 원장은 "정부가 연구중심병원을 키우겠다고 하지만 현장 평가 기준은 여전히 진료 중심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혁신위에서 내려는 목소리도 결국 연구와 산업을 잇는 제도를 손보자는 데로 모인다. 혁신 의료기술 도입으로 병원이 입는 손실에 대한 재정 지원, 의사과학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보상 제도, 의료 데이터 활용의 법적 책임 가이드라인 마련이다. 모두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도록 보상과 책임의 틀을 갖추자는 요구다. 그는 "상품에 제값이 매겨져야 새로운 제품도 개발된다"며 보상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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