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은 이미 시작됐다" 마트 갔다가 '흠칫'…나프타 부족에 바뀐 日 풍경 [뭔日있슈]
과자봉지 바뀌고 가격 인상도 시작
영세업체 도산에 지자체 대책마련 촉구하기도
미국과 이란이 종전 합의를 공식화하면서 중동 정세가 일단 안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입니다.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 호르무즈 해협도 곧 열릴 것으로 보이죠. 일본 입장에서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수입 원유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때문에 이번 종전 합의에 일본 내부에서도 원유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는 안도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이미 원유 부족 사태의 부작용이 시작됐으며, 종전 이후로도 당분간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 부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플라스틱, 합성수지, 도료, 잉크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석유화학 연료죠. 실제로 장을 보러 마트에 가도, 뉴스를 틀어도 이 나프타 부족 사태로 일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거든요. 이번 주는 나프타 부족으로 바뀐 일본의 현재 모습을 전해드릴게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마트 진열대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감자 칩 포장지가 흑백으로 바뀐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죠. 포장지 등에 색을 입히는 인쇄용 잉크, 잉크를 인쇄물에 정착시키는 수지 대부분이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지만 흑백 포장지의 경우 이 안료를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흑백 포장지로 바뀐 것은 감자 칩뿐만이 아닙니다. 저도 설마설마하다가 이번 주 집 앞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거짓말처럼 흑백 포장지로 바뀐 새우 과자를 보게 됐거든요. 흑백 봉지의 과자가 담긴 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꼭 시간여행을 온 듯한 이질감이 들더라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토마토케첩 포장지는 면적 대부분을 투명하게 바꿨습니다. 디자인 면적을 줄여 잉크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죠. 일본에서는 파스타면을 구매하면 원래 1인분씩 종이띠로 소분돼 담겨 있는데, 여기에 보통 '끓는 물에 13분' 이런 식으로 조리 시간 표기를 해놓습니다. 그런데 닛신제분에서는 아예 아무런 표기 없는 파스타면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아침으로 매일 먹는 낫또도 스티로폼 용기 가격이 오르면서 판매를 중단했다가 가격을 올렸다가 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문제가 식료품이나 일상 용품에 그치면 좋을 텐데, 산업계 전반으로도 나프타 부족 사태는 퍼지고 있습니다. 일본 CBC방송이 취재한 아이치현 수도공사업체는 염화비닐 배관 공급이 막히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부족한 자재를 동종업계끼리 돌려쓰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건데요. 자동차 정비업계도 나프타 100%로 제조되는 브레이크 오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어요.
TBS 등에 따르면 도장업계도 시너 부족으로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페인트를 희석하거나 도장 작업에 쓰는 시너는 나프타로 만들어지는데요. 업체들이 일단 기존 재고로 버티곤 있지만 이제 남은 재고로는 한 달도 버티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소·영세업자는 폐업으로 간 사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고야시의 수도공사업체 관계자는 CBC방송에 "개인사업자나 작은 회사 중에서는 이미 도산한 곳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도쿄신문에 따르면 사이타마현 사이타마현노동조합연합회는 지난 12일 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자치단체에 긴급 지원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나프타 부족 사태가 건설·제조 등의 업종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자들이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 것인데요. 노조연합회는 경영과 고용지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나프타 부족으로 일자리와 고용이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 정부와 현장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지금 나프타 부족으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일본 정부는 4월 이후 나프타 공급량은 상당 수준 회복됐으며, 현재는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병목현상'으로 수급이 안 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급은 충분한데, 물량이 어딘가에서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업체들은 "시너와 같은 위험물질을 안 풀고 오래 창고에 쌓아둘 이유가 어딨느냐"며 유통 구조 탓을 하지 말라고 맞서고 있죠.
다만 일본석유화학공업협회는 공급 차질 우려 때문에 일부 업체들이 평소보다 많은 물량을 선점하려 했고, 이런 불안 심리 때문에 중간에 병목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새로운 산업 수요도 나타났습니다. 시너를 사용하지 않고 분말 형태의 도료를 분사해 색을 입히는 '분체도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데요. 재생 플라스틱 등 나프타 부족 사태와 관련 없이 원료를 재활용하는 방법도 주목받고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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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 이렇게 다른 나라 먹고사는 일에 상흔을 남기기도 합니다. 종이 한 장에 서명하는 일로 전쟁이 끝나지만,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일본에서 느끼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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