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금융사 준비 철저해야
금융시장 안정성 유지 검토 필요
정보보안 역량 강화도 중요
지난달 14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가상자산을 어떠한 상품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어떠한 규제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이른바 클래러티 법안(CLARITY Act)이 통과됐다. 지난해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에 관한 지니어스 법안의 통과에 이어 클래러티 법안 통과가 가시화하면서 한국 등 각국도 디지털자산에 대한 제도권 편입을 서두르고 있어 바야흐로 디지털자산 시대가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디지털자산의 개념과 각국의 입법화 과정, 스테이블코인의 확산 전망, 이에 따른 경제주체별 대응방안을 고찰해 본다.
디지털자산은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에 디지털로 기록된 재산적 가치로서 거래와 이전이 가능한 자산'
디지털자산은 초기에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 중심이었지만, 점차 RWA(Real-world Assets), DeFi(Decentralized Finance), 스테이블코인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확산하며 시장이 조성되고 발전해 오고 있다. RWA는 부동산, 미술품 등 유동성이 낮은 고가의 실물 자산을 토큰화(Tokenization)해 더 많은 투자자에게 투자 기회를 주는 형태이고 DeFi는 은행 등 중개기관 없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참여자 간 대출, 송금 등 금융거래를 수행하고 거래 내역은 공개된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방식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종래 가상화폐의 높은 가격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국채 등에 연계하여 발행되며 가격 변동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DeFi의 결제 등에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자산의 국가별 입법화과정
디지털자산에 대한 제도권 인정은 2016년 일본이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을 금융규율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입법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환경이 확산하면서 디지털 결제 및 송금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디지털자산의 편의성이 입증되면서 RWA 거래와 DeFi 대출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결제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 사용도 크게 확대됐다. 유럽에서는 2023년 5월 유럽연합(EU)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가상자산 규제 법안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가 제정됐다. 디지털자산 시장을 포괄적으로 제도화한 첫 사례다. 미국의 경우 2024년 1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함으로써 자본시장에서 디지털자산 거래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난해 7월에는 지니어스 법안(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이 만들어져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법적 규제의 틀을 수립했고 현재 입법화 과정에 있는 클래러티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올해는 디지털자산 시장이 과거 '투기의 영역'에서 '제도권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편입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한국 역시 2024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시행해 불공정거래 규제와 거래소 책임 강화 등을 통해 이용자 보호를 본격화했다. 올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과 관련된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현재 국회에서 입법 논의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
디지털자산 시장 성장 과정에서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부상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금융 인프라 전반의 재설계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은 은행 영업시간, 국가별 결제망, 복잡한 규제 등 다양한 제약 속에서 작동해 왔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 위에서 365일 24시간 중단 없는 가치 이전을 가능하게 한다. 과거 국제 송금은 며칠이 소요되고 높은 수수료가 발생했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실시간에 가까운 송금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최근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금융사와 플랫폼 기업들도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는 향후 규제 환경이 정비될 경우 신속한 사업화로 이어지기 위한 사전 대응으로 보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위해서는 물론 제도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발행 주체와 발행 구조의 안정성, 준비금의 투명성, 이용자 보호장치,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방안 등이 명확해져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급성장 속에서 원화의 통화주권 및 디지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속도감 있게 입법을 추진해 신뢰가능한 발행구조를 갖추되, 실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유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고 관리하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미래의 금융, 탈중앙화·토큰화 비중 증가 예상
디지털자산 시대가 온다면 각국의 경제 주체별 대응에 따라 향후 경쟁력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토큰화 자산 시장은 2030년까지 약 16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BCG(Boston Consulting Group) 컨설팅의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자산의 양적 확대는 블록체인 기술이 웹3.0, 탈중앙화 등과 만나 금융의 미래를 바꾸게 된다. 향후 화폐 시스템의 중심에는 토큰화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종이 화폐나 신용카드 중심 구조는 점차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예금 토큰, 스테이블코인, 토큰 증권 등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은 탈중앙화(DeFi)되고 토큰화되는 비중이 늘어나서 금융투자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경제주체별 준비사항
정부는 디지털자산이 건전한 미래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규제 중심의 제도화보다는 혁신은 권장하면서도 디지털자산 거래가 지속 가능하도록 규칙을 만들어 규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국채 판매를 위한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듯 우리나라도 인공지능(AI) 시대에 디지털자산을 국가전략 이슈로 간주하고 디지털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대기업은 부동산, 지적 재산권 등 실물 자산을 토큰화해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을 확보하고, 글로벌 B2B 거래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역시 기존 은행 대출 외에 DeFi 기반 토큰 담보 대출을 활용하거나, 토큰 증권을 발행하여 소액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 또한 디지털자산과 DeFi 금융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포트폴리오 편입을 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향후 디지털자산 기반의 상속 및 증여, 모바일 디지털 지갑의 일상화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금융사 밸류체인 변화와 디지털자산업무 취급 준비
금융사들 역시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은행·증권·보험 등 업권 전반에서 디지털자산 관련 업무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제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은행은 전통적 밸류체인(가치사슬)인 예금, 대출, 송금, 결제 기능이 디지털 토큰화로 영향받게 될 것인바, 예금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으로 발행하여 실시간 송금 및 결제에 활용하고, 디지털자산의 수탁(Custody) 서비스 및 담보 대출 상품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증권사는 토큰 증권(STO) 발행 플랫폼을 통해 부동산, 미술품, 인프라 투자 시장을 확대하고, 가상자산 ETF 상품 개발 및 운용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보험사는 디지털자산 해킹 손실을 보장하는 사이버 보험 상품개발과 DeFi 기반 온체인 보험 시장 진출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혁신'과 '안정'의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아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자산 시대는 중개기관이 필요 없는 탈중앙화(DeFi) 내지 무정부화(Anarchism)를 지향하면서 정부나 기존 금융시스템의 규제를 피해 극강의 편리함을 좇게 된다.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다. 그렇다고 만약의 경우라도 발생될 수 있는 코인 런 사태 등 금융시스템 붕괴 위험을 민간 혁신 부문에만 의존하여 방치할 수는 없다. 따라서 디지털자산 확대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시장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금융시장의 안정성 유지가 법제화 과정에서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 블록체인 인프라와 기존 시스템 간의 연계(API) 구축과 함께 해킹방지 등 정보보안 (Cyber Security) 역량 강화도 중요하다 눈앞에 성큼 다가온 디지털자산의 시대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촘촘히 제도적 인프라를 마련하고 각 경제주체가 서로 토론하고 합력해서 활성화 방안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금융의 미래가 달려있다. 디지털자산의 시대는 미리 준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임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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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호 금융 칼럼니스트(전 산은금융지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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