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면, 실질GDP보다 명목GDP 봐야"
명목 성장률, 90년대 중반 이후 최고치
주식엔 우호, 채권엔 부담 원화는 강세 전망

경기를 진단할 때 흔히 쓰는 잣대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실질 GDP 성장률이다. 명목 GDP에는 생산량 변화와 가격 변동이 함께 반영되는 반면, 실질 GDP는 물가 영향을 걷어낸 재화·서비스의 물량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경기의 실제 확장 속도를 가늠하는 데 유용해서다. 예를 들어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지 않았는데 물가만 5% 올라도 명목 GDP는 커진다. 그래서 경기의 '실제 생산·소득 활동'이 좋아졌는지 보려면 물가 영향을 제거한 실질 GDP를 본다.


명목 GDP와 실질 GDP의 격차가 벌어지는 국면도 통상 소비자물가 상승, 즉 비용 인플레이션과 연결 지어 해석됐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는 이런 통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가가 아니라 반도체 수출가격 상승이 명목 성장을 끌어올리고 있고, 이렇게 들어온 소득을 어떻게 배분하느냐가 장기 성장 경로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가격이 끌어올린 명목 성장

"명목 성장률 10%…반도체 초과세수 배분, 한국 미래 결정할 것"[클릭 e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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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8일 '한국 명목 성장률 10%의 의미'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최근 한국 경제의 핵심은 실질 GDP보다 명목 GDP 급증에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1분기 명목 GDP는 전기 대비 10.5%, 전년 대비 17.1% 급증해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실질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1.8%, 전년 대비 3.8%에 그쳤다.


하 연구원은 반도체 수출가격 상승이 국내 가계가 부담하는 물가가 아니라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이 지불하는 가격 프리미엄인 만큼, 비용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AI 하드웨어 병목에서 발생한 명목소득이 한국 경제로 유입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컴퓨터 등 관련 품목의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47%까지 오른 상태다.


"초과세수 배분이 장기 성장, 한국의 미래 결정 지을 것"

신한투자증권 보고서 '한국 명목 성장률 10%의 의미' 중 캡쳐

신한투자증권 보고서 '한국 명목 성장률 10%의 의미' 중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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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상승분은 고용소득보다 기업 영업잉여로 먼저 귀속된다. 종합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25년 21.1%에서 올해 1분기 50.9%로 뛰었다. 하 연구원은 종합반도체 기업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이 600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하면서, 중간예납 등을 통해 올해 30조원을 넘는 초과세수가 발생하고 이익 전망치가 더 오르면 금년 납부분은 40조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5년 연간 법인세 세수 84조6000억원의 절반이다.


다만 낙수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진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국내 직원은 약 16만명으로 전체 취업자 2800만명의 0.6%, 전체 피용자보수의 약 2.5%에 그친다.


반도체 대형사의 합산 설비투자(CAPEX)가 전체 설비투자의 약 20%를 차지할 만큼 자본이 특정 산업에 쏠리면서, 비반도체 업종 투자가 위축되면 잠재성장률을 장기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 연구원은 "초과세수를 단기 소비로 소진하지 않고 생산성 전환에 배분해야 1%대 후반으로 낮아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들어오는 대로 다 쓰는 건 바보짓"이라고 언급하고 구윤철 부총리가 초과세수 상당 부분을 국부펀드 재원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점은 생산성 전환을 우선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주식 우호·채권 부담·원화 조건부 강세

2000년대 호주는 중국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명목소득이 먼저 늘고 투자·고용이 뒤따랐지만, 자본과 인력이 광업에 쏠리며 비자원 업종의 경쟁력은 약화됐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경제 전체의 균형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 경제에도 같은 경고를 남긴다고 하 연구원은 지적한다. 보고서 내용 중 캡쳐

2000년대 호주는 중국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명목소득이 먼저 늘고 투자·고용이 뒤따랐지만, 자본과 인력이 광업에 쏠리며 비자원 업종의 경쟁력은 약화됐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경제 전체의 균형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 경제에도 같은 경고를 남긴다고 하 연구원은 지적한다. 보고서 내용 중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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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은 명목 변수에 민감해 직접 수혜가 예상된다. 2026년 코스피 순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5월 말 기준 700조원을 웃돌아 연초 이후 120% 가까이 올랐고, 반도체 대형주가 주도하며 코스피는 2025년 하반기부터 180% 넘게 급등했다.


다만 하 연구원은 내수 서비스업과 구경제 제조업은 같은 수혜를 받기 어렵다며 이익 상향이 확인되는 업종에 집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국면이 채권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전망은 2% 중후반으로 안정적이지만, 명목 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유지하는 구간에서는 국채금리 하락이 제한된다는 분석이다.


원화는 조건부 강세를 전망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3000억달러를 넘어 지난해(1231억달러)의 2배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정학 위험이 완화되고 신성장 산업 투자가 동반되면 원·달러 환율이 1400원선을 밑돌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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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연구원은 "이번 사이클의 진정한 의미는 반도체 가격 상승 자체가 아니다"며 가격 상승이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재정 안정, 기업 투자, 가계소득으로 얼마나 전환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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