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 매각·메가박스 합병 무산
제작 현장 "투자 흐름 막힌다"

중앙그룹의 회생 신청에 가장 크게 흔들리는 업계는 콘텐츠다. JTBC 디폴트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제작사와 협력업체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SLL중앙 산하 제작 레이블과 메가박스의 극장 사업, 나아가 K콘텐츠 투자 생태계 전반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이 15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사옥에서 '중앙홀딩스 등 중앙그룹 계열사 회생신청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2026.06.15 윤동주 기자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이 15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사옥에서 '중앙홀딩스 등 중앙그룹 계열사 회생신청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2026.06.15 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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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공포


서울회생법원 회생2부는 16일 중앙그룹 지주사인 중앙홀딩스를 비롯해 JTBC,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에 대한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채무자가 자산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특정 채권자에게 먼저 변제하는 일을 막는 조치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제작 대금 지급은 사실상 멈출 수 있다.

JTBC와 SLL중앙은 드라마, 예능,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제작사들은 제작비 회수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하청 구조로 얽힌 촬영 스태프, 후반작업 업체, 장비 임대사 등 협력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법정관리 국면에서 우선변제 순위 밖으로 밀리면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제작사 관계자는 "콘텐츠 업계에서 JTBC와 SLL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만큼 전반적인 투자 흐름이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SLL중앙은 드라마하우스·클라이맥스스튜디오·콘텐츠지음 등 드라마 레이블과 BA엔터테인먼트 등 영화 제작사, '흑백요리사'의 스튜디오슬램까지 다수 제작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있다. 단일 스튜디오가 이처럼 광범위한 제작 생태계를 품고 있는 만큼, 모기업의 유동성 위기는 개별 레이블의 제작 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제작비 집행이 불투명해지는 순간, 기획 단계의 작품부터 순서대로 멈춰 선다는 게 제작 현장의 공통된 우려다.


SLL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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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SLL중앙이 이번 회생 신청 대상에서 빠졌다는 사실이다. 콘텐츠 업계는 향후 매각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본다. 프랙시스캐피탈과 텐센트 계열 에이스빌이 프리 IPO 형태로 자금을 넣었고, IPO 추진도 가시화되던 참이었다. 이번 사태로 IPO는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고, 프랙시스 투자에 얽힌 인수금융 상환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소 5000억원에 달하는 재무적투자자(FI) 자금의 회수 경로가 막혔다. SLL이 매각되면 산하 레이블들의 향방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동 걸린 합병 논의


극장 산업의 타격도 만만치 않다. 메가박스는 코로나19 이후 더딘 회복세에도 CGV, 롯데시네마와 차별화된 노선으로 고정 관객층을 유지해왔다. 예술영화 전용관과 서브컬처 마케팅, 공연 실황 상영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정체성을 쌓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실적은 적자 축소에 그쳤다.


수익 구조 정상화를 위해 추진 중인 롯데시네마와의 합병 협상은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롯데쇼핑과 콘텐트리중앙은 지난해 5월 양사 영화관 사업 통합을 선언했다. 업무협약 기한을 올해 6월 30일까지 연장하며 기업가치 산정과 지분 구조 조율을 이어왔다.


메가박스 로고.

메가박스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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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중앙이 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기존 협상은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 기업가치와 재무구조를 다시 따져야 하는 만큼, 합병안이 원형 그대로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게 극장 업계의 시각이다. 독자 회생 경로를 밟을 경우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특히 공연 실황이나 예술영화 수급처럼 상당한 선투자가 따르는 차별화 전략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


구조의 균열


이번 사태를 두고 콘텐츠 업계의 시각은 대체로 일치한다. 중앙그룹의 무리한 확장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이미 업계 전체에 장전돼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그룹은 2026~2032년 올림픽과 2026~2030년 월드컵 중계권 독점 확보에 약 5억 달러(7000억원)를 쏟아부었다. 스포츠 중계권으로 방송 영향력을 키우려는 전략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난 2월 밀라노 동계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1.8%에 그쳤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재편된 환경에서 시청자는 이미 떠난 뒤였고, 광고 수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중앙일보는 회생 대신 워크아웃을 선택했다. 신문은 성장 정체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유지했다. 반면 방송·콘텐츠·극장 사업은 대규모 투자와 제작비 부담, 광고 침체, OTT 경쟁이 동시에 작용하며 유동성을 잠식했다. 방송광고 시장 자체가 구조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환 해설위원, 배성재 캐스터, 박지성 해설위원이 21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에서 열린 JTBC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환 해설위원, 배성재 캐스터, 박지성 해설위원이 21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에서 열린 JTBC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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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방송광고 일총량제를 현행 17%에서 20%로 높이고 중간광고 기준을 완화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9월 시행 목표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규제 완화가 실제 광고 수익 회복으로 이어질지 불투명한 데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정책 하나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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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업계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당장의 대금 미지급이 아니다. 회생이 길어질수록 제작 환경 전반이 냉각되고, 경쟁 스튜디오들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 미디어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가 한 그룹의 몰락을 빌려 수면 위로 올라온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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