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시대, 운세보다 필요한 건 문제를 푸는 힘
사주·타로·굿즈에 기대는 마음, 결국 삶은 실천으로 바뀐다

[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호모 피델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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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의 시대다. 지하철역 앞엔 거리 점집이 늘어서고, 번화가엔 타로 카페가 인기 끌며, 온라인에선 운세 애플리케이션(앱)이 유행이다. 최근 열린 '운세박람회'도 대흥행했다. "내 인생의 날씨를 읽고, 행운을 챙겨 가는 곳"이라는 콘셉트로 열린 이 박람회엔 나흘간 1만3000명이 방문해, 사주 읽고 관상 보면서 취업운·재물운·사랑운 등을 살폈다.


모자란 운을 더해 준다는 이른바 '개운(開運) 굿즈'도 인기다. 액막이 명태 키링, 오행 팔찌, 소코뚜레 현관 방울, 돈 도깨비방망이, 복 부엉이 등 나쁜 기운을 막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소품이 가방에 매달리고 집안 곳곳에 놓이고 있다. 특히 2030 세대의 참여와 호응이 크다. 이들은 반쯤은 재미로, 반쯤은 자기 운명을 알고 싶고 미래를 챙기고 싶은 마음에 '힙 운세'에 참여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 세대의 62.3%가 불안감 해소, 방향성 알기, 호기심 등의 이유로 점, 사주, 타로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도 운세 열풍에 끼어들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개운 부적 이벤트를 열고, 한국조폐공사는 돈명태마그넷을, 국립중앙박물관은 수구다라니 부적을 내놓았다.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tvN 예능 '유퀴즈'는 연초에 관상가가 출연해 "같은 소원을 세 번 빌면 들어준다"고 해 '관악산 등반 열풍'을 일으켰는데,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출연했을 때는 그의 관상을 봐주기도 했다. 미신으로 치부해 공적 영역에서 다루지 않던 금기가 더는 없는 듯하다.


과학적·합리적 사고의 극한을 보여 주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운세 열풍이 분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이성의 극한인 AI와 달리, 운세는 마법적(주술적) 사고방식에 속한다. 크리스 고드슨 옥스퍼드대 교수의 '마법의 역사'(시공사)에 따르면, 인류는 종교, 과학, 마법이라는 세 가지 사고방식을 적절히 섞어 미지를 이겨내고 삶을 바꾸려 애써 왔다.

병에 걸리면, 종교인이나 주술사도 먼저 검증된 과학적 치료법을 찾아 병을 고치려 한다. 그러나 과학은 '내가 왜 고통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병이 심각해 약이 안 들거나 수술해도 소용없을 때 어쩌면 좋을지도 말해 주지 못한다. '마음의 준비를…'이 고작이다. 이때가 바로 기도하고 굿해서 신을 모셔야 할 때다. 구약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병에 걸려 우는 욥의 이야기라는 게 우연은 아니다. 이성의 눈으로 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종교적?마법적 사고가 깨어난다.


불안은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달과 넘치는 풍요에도,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기분,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 삶 전체가 공허에 삼켜질 듯한 몰락의 공포에 빠져 살아간다. 2030 세대의 삶은 암담하기 짝없다. 갈수록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나마 있는 자리도 비정규직을 강요받는데, 집값은 사정없이 올라 몸 붙일 곳조차 마땅치 않다. 어찌해야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는 한 사람으로 설지 막막할 때, 불안이 그를 삼킨다.


운세는 내적 동요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자기 이해를 공급하고, 불행과 불운에서 벗어날 길을 알려준다.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제도 종교가 침묵하는 사이, 주술적 수행이 청년들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외면의 대가로 제도 종교 역시 미래를 잃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2025년 성인 중 "현재 믿는 종교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40%로 내려갔다. 2004년 54%로 정점을 찍은 후 거의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대 청년이나 13~18세 청소년 신자의 비율은 각각 24%, 17%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 종교는 갈수록 노인 공동체로 변하고 있다.


영성이란 자아를 바라는 형태로 변형하는 내적 역능이다. 이는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 안에 항상 생생히 살아 있다. 고난은 영성을 키운다. 좌절과 고통, 불안과 절망이 삶을 장악해 앞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 영성은 반드시 있다. 제도 종교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면서 좋은 삶의 길을 제시하고 실천하면 주술은 약해진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 종교는 교조적 교리와 집단 의례, 교세 확장과 부자 세습, 거대 기념 건축 등에 매달림으로써 청년들 고통과 멀어졌다. 그 틈을 주술이 파고들었다. 점술, 부적술, 인형술 등은 우주의 기운을 빌려 삶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점술가는 무릎을 맞대고 앉아 청년들 아픔을 들어주고, 부적을 써서 답답한 현실을 바꾼다. 가방에 다는 키링 등 인형술은 나쁜 기운을 막고 울적한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 2030 세대는 영성 수행 방식을 종교에서 주술로 가볍게 갈아탄 것이다. 우리 특유의 기복신앙이 여기에 영향을 끼쳤다.


한민의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저녁달)에 따르면, 한국인의 영성은 세속적이다. 단군신화에는 홍익인간의 이념, 즉 '인간을 널리 이롭게'는 우리 영성의 근본 속성을 잘 보여 준다. 시베리아 샤먼이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화(聖化)를 중시한다면, 우리 샤먼은 작두 타면서 신을 불러서 소원을 푸는 청신(請神)을 중시한다. 아무 데나 신이 내릴 리 없다. 지극정성으로 감동시켜야 내린다. 정화수를 놓고 빌고, 백일 새벽 기도를 올리며, 눈길을 뚫고 산길을 오르내리며 절해야 한다.


흥미로운 건 지극정성의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돈으로 구매해 신을 부르려 한다는 점이다. '영성을 팝니다'에서 영국의 신학자 제러미 캐럿 에든버러대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 시대 영성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시장의 소비재로 포섭되면서 영성이 사회 비판적 힘을 상실하고, 심리적 위안과 마음 챙김을 제공하고 세속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적 서비스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고통의 해결을 사회 구조적 개혁이 아니라 타고난 기운 강화나 내면적 변화로 돌리는 게 영성 상품의 특징이다.


운세가 제공하는 자기 서사에는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고 자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실천이 정신을 만든다. 재미로 즐기다 보면, 자칫 운명적 체념에 빠져 현실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힘을 잃을 수 있다. 아직 이 세계엔 답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언제나 더 낫다. 더 나은 존재가 되겠다는 영성에 바탕을 둔 채, 용기를 품고 정치적?사회적 실천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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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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