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컴퍼니 대표) 인터뷰
무용수에 공연기획자·작가·모더레이터까지 넘나들어
"AI 시대엔 몸으로 더 부딪혀 경험 채워야"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컴퍼니 대표)는 로봇이 넘어지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가 무너지는 감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무용수에게 몸은 도구이자 곧 자기 자신인데, 그에겐 함께 춤춘 인공지능(AI) 로봇마저 '또 다른 나의 확장'으로 다가온다. 그가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줄곧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몸이란 무엇이며, 이 빠른 시대에 몸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1989년생인 김 안무가는 무용수이자 공연기획자, 작가, 모더레이터까지 여러 역할을 넘나든다. 경기도무용단에서 13년 6개월간 직업 무용수로 재직하다 퇴사했고 2024년 예술 콘텐츠 기획사 여니스트컴퍼니를 설립했다.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사족보행 AI 로봇 '스팟'과 함께 춤을 추며 본격적으로 AI와 예술의 접목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엔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 '사이 인간' 출간을 비롯한 여러 작업도 함께했다. 끊임없이 변신하는 그를 만나 '몸과 춤, AI와 로봇' 등에 관해 물었다.
-안무가를 직업으로 택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무용을 해왔기에 자연스럽게 무용수의 길을 걸었다. 많은 무용 전공자들은 움직임을 기술적으로 배우는 데 더 집중한다. 배우를 꿈꾸는 사람은 많아도 감독을 꿈꾸는 사람은 적은 것과 같다. 나도 처음엔 '액터'를 꿈꿨지 창작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생 때 창작법 수업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턴 잘 돌고 점프 잘 뛰고 춤 잘 추는 것보다는 춤 자체를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부터 여러 안무가의 작품을 찾아보러 다니며 창작의 매력에 빠졌고 자연스레 직업으로 이어졌다.
-13년 넘게 재직한 경기도무용단을 그만두고 여니스트컴퍼니를 세워 대표를 맡고 있다. 끊임없이 변신하는 열정과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타고난 기질인 것 같다. 후천적 영향을 꼽자면 어머니의 교육이다. 학원보다는 동네 특별활동에 자주 보내셨다. 서예든 판화든 관공서 강연이든 새로운 환경에 무작정 내던지셨다. 어린 친구부터 중학생까지 섞인 낯선 자리에서 어떻게 사람을 사귀고 소통하며 중심을 잡는지를 현장에서 배운 셈이다. 책도 일주일에 다섯 권씩 읽게 해주셨다. 그림책·소설·만화·역사·철학까지 다양했는데, 그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척도가 됐다. 다방면의 지식으로 공통 키워드를 발견했을 때 오는 즐거움을 어릴 때부터 알았다.
-'예술'과 '대중'을 향한 회사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여니스트컴퍼니를 차린 지는 2년이 채 안 됐지만, 그 형태를 설계한 건 13년 전부터다. 무용단에 있는 동안 안무가이자 기획자로서 모델을 꾸준히 만들어 왔고 퇴사하며 곧바로 회사로 비즈니스화했다. 추구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무용이라는 영역을 세상에 알리는 예술 영역과 AI 기반의 콘텐츠·강연 기획이라는 사업 영역이다. 처음엔 무용을 상업화하기 어려웠는데, 다른 영역에서 수익을 내고 예술에서는 더 많은 가치를 추구하니 오히려 선순환됐다.
-사업적인 영감은 무엇으로부터 얻었는지.
▲르네상스의 부흥을 이끈 메디치 가문에서 영감을 받았다. 음악이나 미술과 비교해 대중과 거리가 먼 무용에도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다. 예전엔 한 가문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연대'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예술가와 무용수를 돕는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11년 넘게 '여니스트'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했고 거기서 발생한 수익은 보육원에 기부하거나 예술가에 후원하고 있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와 AI와 예술을 테마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이대영 감독이 지식인·사업가·예술가가 모이는 커뮤니티에 초대했다. 그 중심에 김 교수가 있었다. 당시 코로나19 영향으로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가 화두였고 나는 그걸 안무로 풀어 커뮤니티 콘텐츠에 적용하고 있었다. 당시 김 교수가 "AI 조짐이 예사롭지 않으니 같이 공부해보자"라며 화두를 던졌다. 연구하는 교수들과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모였으니 공통주제로 결과물을 내자는 제안이 있었고 '생성형 오페라'라는 작품과 '생성 예술의 시대'라는 책을 냈다. 그런 작업이 계속 이어졌다.
-무용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 중심에 있었던 건가.
▲사람들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과 불안을 느끼며 산다. 그런데 그 불안이 가능한 건 건강한 몸으로 지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무용은 내 몸이 도구가 되는 예술이다. 내 몸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원하는 것의 절반은 채워져 있으니,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과정도 즐겁게 나아가면 되지 않겠나. 그걸 대중에게 인지시키는 게 무용의 역할이다.
-그런 가치관에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나.
▲갑상선 질환으로 4~5년간 고생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에서도 1년 휴학하고 몸을 완치해야 했다. 아프니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더라. 건강할 땐 몰랐던 것들이다. 그땐 건강한 신체를 가지며 일하는 모두가 부러웠다. 그러다 복학해 창작법 수업을 들으며 무용의 본질적 가치를 알게 됐고 내가 추구할 가치관도 생겼다. 그게 지금의 모든 활동을 만들었다.
2021년 개최된 국내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라이즈 2021 서울’에서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컴퍼니 대표)가 인공지능(AI) 로봇 스팟과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김혜연 안무가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2021년 AI 로봇 '스팟'과 춤을 췄다. 어땠나.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을 때 첫 매칭 작가가 저였다.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 육성 조직인 제로원과 함께했는데, 개발자들이 붙어 스팟의 걸음걸이부터 다리 드는 각도, 앉는 각도까지 움직임을 데이터화했다. 내가 부채로 엉덩이에 바람을 불면 실룩거리고 장구를 두드리면 신나서 따라 두드리게 하는 식이었다. AI와 로봇이 고도화되기 전이라 엉성하긴 했지만 같이 작업하면서 AI 로봇에 애착이 생겼고 예술로 확장하고자 하는 관심도 커졌다.
-로봇을 또 다른 '나'로 느꼈나.
▲무용도 나의 확장이라고 본다. 내 생각을 다른 무용수가 표현해도 그 시작점이 내 정체성에서 파생됐다면 내 작품이다. 형태가 사람 몸이 아니라 로봇이나 AI로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원소스나 초석을 제공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로봇이 넘어지면 마음이 아프다. 나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로보틱스가 더 발전하면 그런 확장 개념은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안무예술계의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보나.
▲AI 시대가 양극화를 만든다고들 하는데, 무용에서도 진행 중이다. 예술가의 주제 안에 AI가 자발적으로 들어오고 지원받는 사업에도 AI 파트가 많아졌다. 예술가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AI에 호기심을 갖고 적극 시작하는 사람, 아예 안 쓰겠다고 선언하며 순수 작업으로 자기 예술관을 더 집요하게 몰고 가는 사람. 중간에 애매하게 걸친 경우는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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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안무가, 혹은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여행하라고 말하고 싶다. 책은 혼자 빠르게 하는 세상 경험이고 사람을 만나는 건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다. 젊은 여성 후배들에겐 젊음이 가장 큰 무기라고 말한다. 비어 있고 부족한 게 나쁜 게 아니라 엄청난 무기다. 부족하니 누군가 도와주고 채워주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러니 수줍어 말고 항상 들이대라. 가보지 않은 땅을 직접 밟고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이 자기 세계를 넓히는 가장 큰 길이다. AI 시대엔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둘 다 중요하지만 속도가 방향을 만들어주는 시대다. 사유하고 철학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직접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AI는 특히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휩쓸려 가라는 게 아니라, 그 속도 속에서 내 중심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여보라는 것이다. AI 시대는 오히려 몸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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