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풍경 아닌 안전"…G7 개최지로 파리 아닌 에비앙 택한 이유
2003년 이어 두 번째 에비앙 G7 정상회의
출입 통제·공항 인접으로 보안·접근성 충족
인근 제네바선 2만명 반대 시위…경찰 충돌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지로 프랑스 남동부의 휴양지 에비앙레뱅이 낙점된 결정적 이유는 빼어난 풍광이 아니라 안전이었다.
연합뉴스는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를 인용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G7 정상과 한국·인도·브라질·이집트·케냐 등 초청국 정상을 수도 파리가 아닌 에비앙레뱅으로 불러 모은 배경을 보도했다.
G7 정상회의의 출발점은 격식을 덜어낸 대화였다. 지난 1975년 G7 체제를 출범시킨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수행원을 최소화하고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정상 간 직접 대화를 끌어내고자 했다. 그는 제럴드 포드 당시 미국 대통령, 알도 모로 당시 이탈리아 총리 등을 랑부예성으로 초청해 벽난로 앞에서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회의가 거듭되고 언론의 관심이 커지면서 개최국들은 전 세계 방송 화면에 엽서처럼 멋진 자국 풍경을 내보이려는 경쟁에 들어갔다. 미국이 지난 1976년 2차 회의를 카리브해 자치령 푸에르토리코에서 연 것이나, 이탈리아가 1980년과 1987년 회의를 베네치아에서 치른 것이 대표적이다.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 등을 황금빛으로 빛나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과거 오사마 빈라덴 위험도 존재…에비앙레뱅, 보안·접근성 '이상적'
올해 무대인 에비앙레뱅 역시 뒤로는 알프스 산기슭, 앞으로는 레만호(제네바호)가 펼쳐진 풍광을 자랑하는 휴양지다. 지난 2003년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에도 이곳에서 G7 회의가 열렸는데, 캐나다 토론토대의 G7 정상회의 전문가인 존 커턴 교수는 "당시 장소 선정의 최우선 요건은 풍경이 아닌 보안이었다"고 설명했다.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 G7 정상회의에서 반세계화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해 시위대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개최국들은 시위대 접근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위험 요소는 오사마 빈라덴이었다. 커턴 교수의 동료인 매들린 코치는 "빈라덴이 제노바 정상회의를 겨냥해 테러를 계획했었다"며 "특히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2002년 여름 차기 회의를 맡은 의장국 캐나다가 로키산맥 자락의 카나나스키스를 골랐다. 커턴 교수는 이곳을 두고 "로키산맥 깊숙이 완전히 고립된 곳으로, 단 하나의 도로로만 들어갈 수 있고 캐나다와 미국 공군 기지와도 비교적 가깝다"고 말했다.
호숫가에 자리한 에비앙레뱅도 출입 통제가 비교적 수월한 데다 외국 대표단을 수용할 호텔과 인근 스위스 제네바 국제공항을 끼고 있어 보안과 접근성 양면에서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G7 하루 앞두고 시위대 2만명과 경찰 충돌
이런 보안 조치에 따라 이번 회의를 규탄하는 G7 반대 시위대는 국경 너머 스위스 제네바로 밀려났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에비앙레뱅과 제네바 국경 일대에는 경찰과 군인 1만 2000명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제네바에서는 최루탄과 물대포가 동원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유엔 본부가 있는 제네바 중심가에 'G7 반대'를 외치며 모인 시위대 2만명과 경찰이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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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푯말을 들고 평화롭게 행진하던 시위대는 자본주의와 강대국 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경찰을 향해 벽돌과 물병을 던졌고, 주차된 테슬라 차량에 불을 지르고 유엔 건물 유리창을 깨뜨렸다. 한 시위 참가자는 AFP에 "G7은 부자들의 모임일 뿐"이라며 "부익부 빈익빈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자리"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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