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고밀아파트 정비' 전문가 좌담회
맞춤형 리모델링 고도화·부담가능주택 공급↑
"주거환경 개선보다 자산가치 증식 의도 커"
외곽 밀려난 구성원 기회비용·편익도 살펴야
개발이익 환수·명확한 도시계획 기준 제시 필요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 등 도심의 노후 고밀 아파트 문제가 더 이상 먼 미래 얘기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아시아경제 사옥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회에는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와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미 지어진 고밀아파트의 경우 재건축보단 지속적인 정비를 통해 건물 수명을 유지하고, 관계당국에는 도심과 외곽지역의 주택 밀도를 점검하는 등 도시계획 전반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도심 내 고층·고밀 아파트 수요는 여전히 큰 만큼 진입 문턱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변창흠 세종대 교수,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11일 아시아경제에서 진행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이창무 한양대 교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변창흠 세종대 교수,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11일 아시아경제에서 진행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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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래된 고밀·고층아파트, 어떻게 정비하는 게 적절할까.

▶이태희 연구위원: 세대증가형 리모델링은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 사례에서 보듯,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사비가 싼 것도 아니고 아파트 상품성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주거환경이나 도시경관 개선 측면에서도 나아진 게 없다. 극소수 일부를 제외하면 사업성이 낮아 재건축이 어려운 곳이 대부분일 텐데, 맞춤형 리모델링 같은 사업모델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리스크가 크고 큰 비용이 드는 이주를 수반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만큼만, 부담가능한 수준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도시계획이나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식의 정책지원, 장기 할부로 충당할 수 있는 금융이나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정흔 위원장: 서울시 차원에서 사업성을 높여주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데,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사회적 필요보다는 자산가치 증식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수요에 더 쏠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도성장기 도심에 인구가 몰리던 시기에는 민간의 자본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순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개발사업은 어렵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서민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고 그럼에도 이를 계속 작동하기 위해 용적률 상향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결국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창무 교수: 도시 전체 구조나 구성원 관점에서 기회비용이나 사회적 비용·편익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발압력이 있는 곳에 고밀로 안 지으면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외곽에 살 경우 공간이동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매우 커진다. 비용을 최적화하면서 집적 이익을 누리는 게 도시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고밀개발을 수용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하는 비용, 가령 장거리 이동에 따른 불편이나 환경오염 같은 것도 같이 따져봐야 한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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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밀 아파트, 무엇이 문제일까.

▶변창흠 교수: 고밀이냐 저밀이냐 보다 중요한 게 정비사업을 거치면서 지나치게 큰 단지, 비싼 아파트를 만드는 게 더 문제라 할 수 있다. 단지가 커지다 보니 도심 내 섬처럼 존재하면서 기능을 분절시킨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정비과정에서 든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비싸게 짓는다.


집값이 비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 촉진 정책을 펼치는데 오히려 신축 단지가 주변 가격을 더 올리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보다 더 고밀로 개발해도 괜찮다고 본다. 중요한 건 싼 집, 부담가능한 주택을 어떻게 마련할지 혹은 기존 거주민이 쫓겨나지 않는 주택을 어떻게 만들지, 투자사업이 아니라 우리 동네를 어떻게 만들지 식의 고민이 부족하다.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를 만들겠다' '빨리, 많이 짓겠다' 식으로만 논의하는데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조정흔: 용적률을 더 주는 게 고밀 개발을 통해 기존 원주민 재정착을 위한 측면이 있는데 이게 결국 자원 배분 과정에서 왜곡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기존 주민은 2억, 3억원 집을 조금씩 고쳐가면서 사는 것도 괜찮은데 돈을 별로 안 들이고 10억짜리 아파트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어떻게든 사업은 추진되지만 분양가가 올라가고 거기에 투자하게끔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이 설계돼 있다. 이렇게 집이 비싸진다면 재정착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용적률 같은 정책 수단을 확대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이창무: 신축 아파트가 생기면 그에 따른 연쇄적인 주거이동, 주거 소비 상향이 연이어 나타나는 구조다. 국지적인 주거 소비에 대한 부분을 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광역적인 주거 이동 연쇄 고리가 있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1기신도시인 성남시 분당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1기신도시인 성남시 분당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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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기 신도시·노후계획도시 재건축 가능할까. 용적률을 더 주는 것 말고 사업성을 높일 방안이 있나.

▶이창무: 분당은 판교라는 지역의 고용 중심지가 생기면서 고밀 개발을 원하는 시장 압력이 생겼다. 역세권 단지를 중심으로 재건축 압력이 생긴 만큼 용적률을 더 주는 식으로 북돋을 필요가 있다. 반면 일산에서 용적률 500%로 높여준다고 해서 재건축이 될까. 개발압력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정비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부담이다.


▶변창흠: 계획도시는 인구나 가구 수에 맞춰 각종 기반시설을 맞춰놨다. 이곳을 정비하려면 전체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일부 단지 시범사업 형태로 하는 건 적절치 않다. 시범모델을 전체 단지에 적용할 수 없지 않은가. 뉴타운이나 서울시 소규모 주택정비모델로 추진 중인 모아타운도 비슷하다. 개별적으로 사업성을 높이려는 시도지만 기반시설 부담은 외면한다. 총괄적인 계획 아래 역할 분담을 하고 인프라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이태희: 사업성이 좋은 곳에서 현금을 받아 그렇지 못한 곳으로 교차보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도 현금보다는 현물 기부채납을 선호하는데, 일부라도 현금화를 해 재원을 마련하고 사업성이 부족한 곳에 최소한의 임계점을 넘어갈 수준으로 보조해주는 방식, 즉 갭펀딩(gap funding) 방식이다. 결합정비를 통해 특정 지역이나 사업장끼리 매칭하는 방식보다는 도시정비기금이라는 큰 틀에 넣어 교차보조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하면 논란이 덜할 것으로 본다.


▶조정흔: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나 근거가 약하다. 사업성이 낮은 곳에 공공이 개입하거나 용적률 혜택을 주는 것도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텐데 결국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만 갖고 추진하면 한계가 있다. 사실상 개발이익을 내기 어려운 곳이 많은데 사업성을 기준으로 하는 기존의 문법과 달리 공공이 관여해 일정한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고밀아파트 정비 관련 전문가 좌담회가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열렸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왼쪽부터), 변창흠 세종대 교수, 이창무 한양대 교수,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고밀아파트 정비 관련 전문가 좌담회가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열렸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왼쪽부터), 변창흠 세종대 교수, 이창무 한양대 교수,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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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층·고밀개발도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이창무: 압구정 재건축의 경우 정비계획 수립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 조율한 게 건물을 높이는 대신 슬림하게, 즉 건폐율을 줄여 일조를 늘리고 공원이나 녹지·광장 등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하는 식으로 한 거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이러한 공간을 여럿이 즐길 수 있는 구도를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변창흠 교수: 외국에선 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도시마다 기준점을 둔다. 독일 쾰른에서는 모든 건물이 쾰른 대성당보다 낮아야 한다는 식으로. 한강변 역시 조망과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해 통경축을 갖춰야 하는데 실제 잘 지켜지지 않고 틈마다 건물이 들어서면서 높은 벽이 돼버린 것이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철저하게 어느 지점에서 통경축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원칙을 명확히 지킨다면 고층 자체를 나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에서는 주택 모델이 사실상 고층 아파트와 4층 이하 다세대 두 가지뿐인데 중간 형태의 저층 주거 모델도 필요하다. 기존 저층 주거지를 모두 고층으로 바꾸는 게 불가능한 만큼 건축법·주차장법 등 기존 도시계획을 전면 재검토해 부담가능한 수준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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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최일권 경제금융에디터 겸 건설부동산부장, 정리: 최대열 기자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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