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 트래블]모노레일이 연 청남대, 그림책이 연 도청
청남대 모노레일에서 충북도청 그림책정원까지
대통령 별장과 100년 관청의 환골탈태
여행자의 숲길·문화공간, 시민을 넘어 관광 명소로
좋은 여행지는 대개 문 하나 열고 들어가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청주의 문은 조금 특이하다. 하나는 대통령 별장으로 향하는 숲길에 있고, 다른 하나는 도청 본관의 오래된 복도에 있다. 한때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공간들이 이제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청남대와 충북도청 일대가 요즘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청남대는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을 지닌 곳이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대통령 휴양시설로 쓰였고, 이후 일반에 개방됐다. 설명만 들으면 역사 관광지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매력은 조금 다르다. 이곳은 권력의 공간이 자연의 공간으로 천천히 풀려나는 장소다. 본관과 대통령기념관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낮은 바람, 오래된 나무, 대청호의 물빛이 먼저 말을 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모노레일이다. 과거 청남대 제1전망대에 오르려면 가파른 산길과 645개 계단을 감수해야 했다. 지금은 정비창고와 제1전망대 사이 약 330m 구간을 모노레일이 오간다. 20인승 차량 2량으로 구성돼 한 번에 최대 40명이 탈 수 있다. 숫자로는 짧은 이동이지만, 체감은 작지 않다. 계단 앞에서 망설였던 사람들에게 전망대가 열린 셈이다.
모노레일은 빠른 탈것이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올라서 좋다. 숲이 가까워졌다가 조금씩 물러나고, 그 사이로 대청호가 열린다. 전망대에 닿으면 청남대와 대청호, 산림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힘들게 올라와야 볼 수 있는 풍경'이 '함께 올라와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바뀐 순간이다. 여행에서 접근성은 종종 감동의 조건이 된다. 누구나 같은 높이에서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 때, 장소의 표정 또한 달라진다.
오후에는 충북도청으로 방향을 틀 만하다. 도청은 본래 여행자가 찾아가는 장소가 아니다. 민원실, 주차장, 행정 안내판이 선명한 공간이지만, 청주의 도청 본관은 그 선입견을 조금 비켜선다. 100년 가까운 시간을 품은 건물 안에 '그림책정원 1937'이 들어섰다. 벽돌, 복도, 창문, 목재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사이로 그림책과 전시가 공간을 채운다. 관공서라기보다 오래된 도서관, 혹은 조용한 미술관에 가깝다.
이 공간의 미덕은 새것처럼 꾸미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래된 벽은 오래된 벽대로 남아 있고, 복도는 복도답게 길다. 그 사이에 책장이 놓이고, 의자가 놓이고,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방이 생겼다. 어린이는 그림책을 보고, 어른은 건물의 시간을 본다. 하나의 공간이 세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여행지가 꼭 멀리 있거나 화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기서 조금 느슨해진다.
도청 옆 '당산 생각의 벙커'도 함께 묶으면 동선이 단단해진다. 이곳은 1973년 전시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진 지하 충무시설이었다. 길이 약 200m, 폭 4m, 높이 5.2m 규모의 지하 공간이 지금은 전시와 체험, 공연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벙커 안 10개 방은 설치, 영상, 참여형 프로그램을 담는 전시장으로 쓰인다. 가장 방어적이던 공간이 가장 감각적인 핫플레이스로 바뀐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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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와 충북도청 일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둘 다 닫혀 있던 곳이다. 하나는 권력의 휴양지였고, 하나는 행정의 심장부였다. 여기에 지하 벙커까지 더하면 청주 여행은 단순한 명소 순례가 아니라 공간의 용도가 바뀌는 장면을 따라가는 일이 된다. 대통령 별장은 산책로가 되고, 도청 본관은 그림책 정원이 되고, 벙커는 전시장이 된다. 도시가 과거를 지우지 않고 다시 쓰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코스는 요란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오전에는 청남대 모노레일을 타고 대청호를 내려다본다. 오후에는 도청 본관의 복도를 걸으며 그림책과 전시를 본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와 문화제조창까지 이어가도 좋다. 청주의 매력은 새로 만든 랜드마크보다, 오래된 공간을 다시 여는 방식에 있다. 숲과 호수, 관청과 벙커, 그림책과 미술관이 한 도시 안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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