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물량, 포스코는 AI…철강 경쟁력 새 승부수
예지보전부터 휴머노이드까지 현장 적용 준비
"철강도 이제 데이터가 경쟁력"

제철소는 오랫동안 '감(感)의 산업'이었다. 설비에서 평소와 다른 소리가 나면 베테랑 작업자가 먼저 알아챘다. 진동이 조금 달라져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쇳물 온도를 재고 시료를 채취하는 위험한 작업도 결국 사람 몫이었다. 수십년간 축적된 경험과 숙련이 생산 현장을 움직였다. 하지만 철강산업이 변하고 있다. 숙련 인력은 줄어들고 중국 철강업체들은 거대한 생산능력을 앞세워 추격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안전사고를 줄여야 하는 과제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11일 찾은 경북 포항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AI와 로봇이 철강 생산 현장에 들어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숙련공의 경험을 데이터로 바꾸고, 사람이 하던 위험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는 'AI 제철소' 실험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포스코가 추진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산업통상부의 제조업 AI 전환(M.AX) 사업 가운데 철강 분야 대표 과제다.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로봇융합연구원,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등 10개 기관이 참여하며 총 사업비는 175억원 규모다. 단순한 자동화가 아닌 AI 기반 자율 예지보전과 로봇을 활용해 철강 생산체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 목표다.

11일 경북 포항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 방열복을 입은 로봇이 용선 측온 장비를 조작하며 제철소 고위험 작업을 재현하고 있다. 포스코와 연구진은 휴머노이드 기반 작업 로봇을 활용해 제철소 위험 공정의 무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강나훔 기자

11일 경북 포항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 방열복을 입은 로봇이 용선 측온 장비를 조작하며 제철소 고위험 작업을 재현하고 있다. 포스코와 연구진은 휴머노이드 기반 작업 로봇을 활용해 제철소 위험 공정의 무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강나훔 기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휴머노이드, 쇳물 앞에 서다


이날 가장 먼저 공개된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사람 키만 한 로봇은 두 팔을 이용해 작업 장비를 집어 들고 용선 샘플링과 측온 작업을 재현했다. 실제 제철소에서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자가 직접 온도를 측정하고 시료를 채취한다. 작은 실수 하나가 화상이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고위험 작업이다.


연구진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는 이러한 작업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양팔을 활용해 최대 40~45㎏ 수준의 작업물을 다룰 수 있으며 고온·분진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시연장에서는 로봇이 측온봉을 잡고 목표 지점으로 이동한 뒤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아직은 실증 단계지만 연구진은 향후 실제 제철소 현장 투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방열복을 입고 수행해야 했던 작업이다. 앞으로는 로봇이 위험지역에 들어가고 작업자는 안전한 장소에서 이를 제어하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재열 KIRO 통합로봇시스템연구본부 본부장은 "철강 공정은 자동화가 어려운 산업으로 꼽히지만 안전사고 위험이 큰 작업은 반드시 무인화가 필요하다"며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되면 현장 안전 수준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장 나기 전에 안다"…AI가 설비 감시도


휴머노이드보다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은 AI 예지보전 시스템이다. 시연장 한쪽에는 벨트컨베이어 점검 로봇과 고로 설비 점검 로봇이 배치돼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이동형 로봇 같지만 내부에서는 복잡한 AI 분석이 이뤄진다. 로봇은 설비를 돌아다니며 영상과 음향, 진동, 열화상 데이터를 수집한다. AI는 이를 분석해 정상 상태와 다른 패턴을 찾아낸다. 설비 온도가 조금 높아졌는지, 베어링 소음이 달라졌는지, 진동 주파수에 이상이 있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포스코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멀티모달 AI 기술이다. 기존에는 한 가지 데이터만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 설비 고장은 여러 징후가 동시에 나타난다. 영상과 음향, 열화상 정보를 함께 분석해야 정확도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작업자가 현장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문제를 발견하던 과정을 AI가 대신하는 셈이다.


최자영 포스코 수석연구원은 "설비가 멈춘 뒤 원인을 찾는 방식에서 설비가 멈추기 전에 이상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예지보전 기술이 고도화되면 생산 차질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철강산업에서는 설비 하나가 멈추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고로는 대표적인 장치산업 설비다.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 없다. 고장으로 인한 비가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 차질과 비용 부담도 커진다. 이 때문에 글로벌 철강업계는 최근 AI 예지보전 기술 도입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11일 경북 포항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에서 포스코와 공동 개발 중인 벨트컨베이어 예지보전 로봇이 시연되고 있다.사진=강나훔 기자

11일 경북 포항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에서 포스코와 공동 개발 중인 벨트컨베이어 예지보전 로봇이 시연되고 있다.사진=강나훔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숙련공의 경험이 데이터가 된다


AI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포스코는 이번 사업을 통해 제철소 곳곳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영상과 소리, 진동, 열화상 데이터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니다. 오랫동안 숙련공들이 경험으로 판단하던 영역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


과거에는 "이 정도 소리가 나면 베어링 문제", "이 진동이면 설비 점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사람이 내렸다. 이제는 AI가 수천, 수만 건의 데이터를 학습해 같은 결론을 내린다.


박지성 포스코 1제선공장장은 "향후에는 AI가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분석해 작업자에게 알려주고 일부 설비는 자율적으로 제어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설비를 관리하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AI가 설비를 관리하고 사람은 이를 감독하는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중국 물량 공세 속 철강의 생존 전략


포스코가 AI 전환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글로벌 경쟁 심화도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철강업체들은 압도적인 생산 규모를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가격 경쟁만으로는 한국 철강업계가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생산성과 품질, 안전성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특히 인력 구조 변화도 변수다. 젊은 인력 유입은 줄고 숙련 인력은 고령화되고 있다. 경험에 의존하던 생산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AI와 로봇은 이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위험 작업은 로봇이 수행하고, 설비 상태는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작업자는 운영과 관리에 집중하는 구조다.


한때 철강 경쟁력은 누가 더 큰 고로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후엔 누가 더 좋은 품질을 생산하느냐가 중요했다. 이제는 또 AI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AD

포항에서 만난 휴머노이드 로봇은 단순한 시연 장비가 아니었다. 그 뒤에는 AI가 설비를 진단하고, 로봇이 위험 작업을 수행하며, 데이터가 생산 현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철강산업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포항=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