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보다 무서운 건 국제사회의 무관심[과학을읽다]
WHO 비상사태 선포에도 확산세 지속…전문가들 "현장 대응 인력·국제 협력이 더 시급"
한국 의료진·NGO 활동도 제약…"글로벌 보건안보 역할 재점검해야"
세계보건기구(WHO)가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우간다에서 확산 중인 '분디부교(Bundibugyo)형' 에볼라에 대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백신과 치료제보다 의료 인력과 방역 체계가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감염병 확산을 넘어 국제 공조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이후 강화됐다고 평가받던 글로벌 보건안보 체계가 연구비 축소와 국제기구 역할 약화 속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이투리주 부니아에서 분디부교형 에볼라 대응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WHO와 현지 보건당국은 확산 차단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사진=WHO]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은 12일 오후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K) 에볼라 전문가 브리핑에서 "현재 에볼라는 생각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은 크지 않다"며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지만 에볼라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의 WHO 탈퇴와 감염병 연구비 삭감이 이어지면서 국제 감염병 대응 체계 곳곳에서 공백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현재 유행 중인 분디부교형 에볼라는 기존 자이르형 에볼라에 적용되던 백신과 치료제가 사실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국제 백신 개발기구와 제약사들이 신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지만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차장은 "현재 CEPI가 옥스퍼드대, VSV 플랫폼, mRNA 플랫폼 등 3개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긴급 지원하고 있다"며 "플랫폼 기술이 확보돼 있어 개발 자체는 가능하지만 임상과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기준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우간다에서 발생한 분디부교형(Bundibugyo)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사례 분포도. 원의 크기는 지역별 확진자 수를 나타내며, 확진 사례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이투리(Ituri)주와 북키부(Nord-Kivu)주, 우간다 서나일(West Nile) 지역 및 수도 캄팔라(Kampala) 일대에 집중돼 있다. [그림=WHO]
원본보기 아이콘특히 전문가들은 백신 개발보다 현장 대응 역량 확보가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활용까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며 "그 기간 동안은 결국 방역 인력과 의료 지원을 통해 유행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발생 지역인 콩고 동부 이투리(Ituri)와 북키부(North Kivu) 지역이 반군 활동이 이어지는 분쟁 지역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유행이 발생하다 보니 WHO와 국제 구호단체 활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2018년 에볼라 유행 당시에도 방역센터가 공격받고 의료진 안전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여하고 싶어도 못 가는 구조"
전문가들은 한국의 역할 확대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국내에는 과거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 당시 현장 경험을 가진 의료진이 적지 않다"며 "국제사회가 요청할 경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그는 "현재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이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국경없는의사회(MSF) 등 민간 의료진 파견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며 "감염병 대응 경험을 가진 NGO와 의료진이 활동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류 센터장 역시 "한국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진단 역량과 방역 경험을 축적했다"며 "수익성 논리를 넘어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분야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에볼라 사태가 특정 지역의 감염병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보건안보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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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감염병은 언제나 예상 밖의 방식으로 등장한다"며 "에볼라가 보여주는 것은 바이러스 자체의 위험성뿐 아니라 국제 공조 체계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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