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사외이사]③168개 안건 중 반대는 1건뿐…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왜 '거수기'가 됐나
4대 금융지주 이사회 안건 가결률 100%
사외이사 대부분 최고 평가에도 CEO 견제 흔적 미미
CEO 견제 기능 실종…선임·연임 구조가 독립성 훼손
"내부통제 실패 땐 이사회도 책임져야"
지난해 4대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반대표가 나온 안건은 단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은행권 부당대출과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등 각종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사외이사(개정 상법상 독립이사)의 경영진 감시·견제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이사회는 여전히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찬성표만 던지는 '거수기'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4대 금융지주 이사회 안건 가결률 100%…사외이사 평가는 'A학점'
14일 KB·신한·하나·우리금융이 은행연합회에 공시한 '2025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총 51차례 이사회를 열어 168건의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이 가운데 반대표가 나온 안건은 단 1건뿐이었다. 168건 중 167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유일한 반대 의견은 KB금융의 자사주 취득 및 소각 안건에서 나왔다. 다만 해당 안건 역시 최종 가결돼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이사회 안건 가결률은 100%를 기록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이사회 안건은 사전 논의 과정을 거쳐 충분히 검토된 뒤 상정된다"며 "반대 의견이 적다고 해서 이사회가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그대로 따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100%에 달하는 가결률은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그럼에도 이사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최고 또는 차상위 등급이었다.
KB금융은 지난해 사외이사 7명 전원에게 최고 등급인 '매우 우수' 평가를 부여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도 사외이사 각각 9명 전원에게 '최고' 또는 '기대 수준 이상' 등급을 줬다. 우리금융 역시 사외이사 7명 전원에게 '최우수' 또는 '우수' 평가를 내렸다.
이 같은 평가 체계는 대부분 내부평가에 의존하고 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하나금융은 내부평가 방식을 취하되 평가 업무를 외부기관에 위탁하고 있다. 우리금융만 유일하게 외부평가기관이 전체 평가의 30%를 담당한다.
KB금융을 비롯한 금융지주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공신력 있는 외부평가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외이사가 최고 수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현행 평가 체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사외이사 평가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평가 결과에 따라 이사가 교체된 사례도 사실상 없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교체 사유를 보면 대부분 법정 임기 만료에 따른 자연 교체였으며, 평가 결과를 이유로 교체된 사례는 1건도 없었다.
CEO 견제는커녕 연임 지원…"견제 실패한 이사회도 책임져야"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는 선임 방식과 임기 구조가 꼽힌다. 금융지주 CEO가 사실상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선임된 이사는 통상 2년 임기 후 1년 단위로 연임하면서 최장 6년까지 재직한다. 연임 여부가 CEO의 영향권 안에 있는 만큼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일반 기업의 사외이사는 3년 임기에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특히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이 과정에서 경영진을 견제하기보다 CEO 연임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CEO 후보를 추천하고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CEO를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오히려 CEO 연임을 뒷받침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이 이른바 '금융지주 CEO 3연임 금지법'과 같은 '극약처방'을 검토하는 것도 적정성 논란과는 별개로 장기간 해소되지 않은 이사회 독립성 논란과 무관치 않다.
최근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에 맞춰 독립이사 중심의 이사회 체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지주는 이미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고 임추위 등 각종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으로는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의 '거수기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사회 평가와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대형 금융사고 등 내부통제 실패로 CEO가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경우,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 전체에도 일정 부분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현재 금융지주 책무구조도상 이사회 의장만 내부통제 관련 책임을 지고 있고, CEO 선임·연임에 관여하는 임추위 소속 사외이사들은 제외돼 있다"며 "사외이사들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CEO를 추천·선임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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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직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실질적인 견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함께 확대해야 한다"며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선임 구조와 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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