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끊이지 않는 中企 기술탈취

엔이씨파워, 핵심코드 넘기고 계약 불발
이후 상대기업 유사 기술 출시

지난해 中企 기술탈취 474건
피해액 25억3000만원…매년 증가

긴 소송기간에 막대한 손실도
씨디에스글로벌, 3년 분쟁에 결국 폐업

편집자주중소기업 기술탈취는 수년, 수십 년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파괴적 행위다. 정부가 관련 제도를 손질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힘겹고 처절하다. 끝 모를 소송전에 수반되는 막대한 비용 부담 탓에 침묵을 택하거나, 가까스로 승소하고도 결국 폐업에 이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왜 이런 부조리가 바로잡히지 않는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이제 꿈을 이루는구나 싶었는데,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심재용 엔이씨파워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심재용 엔이씨파워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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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심재용 엔이씨파워 대표는 5년 전의 '그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토로했다. 2021년 2월, 심 대표는 국내 대형 건설업체 A사로부터 인공지능(AI) 기반 소각로 관리 기술을 제공하는 내용의 계약을 제안받았다. 건설사에서 종합 환경회사로의 도약을 준비하던 A사가 인수한 13개 소각로에 해당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해외 사업 확장까지 겨냥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심 대표는 A사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엔이씨파워의 기술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자료와 핵심 코드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A사는 얼마 뒤 '계약 불발'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 A사는 엔이씨파워의 기술과 거의 똑같은 기술을 출시하고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심 대표는 "2008년부터 15년간 인생을 바쳐 개발한 내 기술을 1년 만에 빼앗기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 기분이었다"며 "사건 이후 투자사가 투자를 취소하면서 회사가 급격히 쪼그라들었고, 직원들은 대부분 퇴사해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연간 474건 기술침해…피해액은 25억원

대기업과의 기술거래 과정에서 억울하게 기술을 빼앗기는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 기업 상당수가 긴 소송 기간과 거래 단절 우려, 입증 부담 등을 이유로 분쟁조차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기술을 부당하게 활용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이다.

"인생 바친 내 기술, 1년만에 빼앗겨" 회사가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中企 기술탈취 그 후]① 원본보기 아이콘

중소벤처기업부가 시행한 '2025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연간 기술침해 건수는 약 474건으로 집계된다. 기술탈취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23년 14억9000만원이었던 중소기업의 평균 피해 금액은 2025년에 25억3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기술침해를 경험한 기업의 27.8%는 "피해 이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3년 넘는 소송 버티다 폐업

업계는 긴 소송기간과 피해 사실 입증의 어려움, 턱없이 부족한 손해배상금 등을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피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전담 법무 인력이 따로 없고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은 치명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송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현금 흐름이 막히면서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기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술탈취 1심 판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년이 넘는데, 승소율은 32.9%로 일반 민사소송(2021년 기준 55.75%)에 비해 저조했다.

씨디에스글로벌이 인산가에 납품한 죽염 용융로 이미지. 씨디에스글로벌

씨디에스글로벌이 인산가에 납품한 죽염 용융로 이미지. 씨디에스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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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처리 설비 제조 업체 씨디에스글로벌도 2018년부터 죽염 제조 기업 B사와 7년 넘게 법적 분쟁을 이어오다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2009년, 씨디에스글로벌은 소금 기둥을 1500℃ 이상의 고온에서 가열하는 장치인 '죽염 용융로'를 B사에 납품하면서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있던 준공 도면을 제공했다. 7년 뒤 B사는 이 도면을 활용해 유사한 구조의 설비를 특허 등록하고 코스닥 상장까지 진행했다.


씨디에스글로벌은 곧바로 법적 소송에 들어가 2023년 2심에서 특허법원으로부터 전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B사가 상고하고 여러 차례 상고이유 보충서까지 제출하면서 사건은 3년 넘게 대법원에 계류하고 있다. 이 기간 씨디에스글로벌의 창업자인 김지원 회장이 별세하고 급격히 사세가 기울면서 씨디에스글로벌은 결국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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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담당한 김찬미 변리사는 "상대 기업이 특허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최대한 소송을 지연시키며 이득을 취하더라도 피해기업 입장에선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소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13억 규모의 납품 기회를 날렸고, 소송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2심부터는 사비를 쓰며 버텨오다 결국 폐업을 결정하게 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인생 바친 내 기술, 1년만에 빼앗겨" 회사가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中企 기술탈취 그 후]① 원본보기 아이콘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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