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왜 이렇게 많아" 18년 만에 서울대 찾은 젠슨 황
GPU 미래 내다본 젠슨 황, 서울대 뒷이야기
여학생에 놀라고 수저세트에 감탄한 엔비디아
다양성과 AI 역량 모두 갖춘 공학 인재 육성
한국, 다분야 결합된 'AI 산업 파트너'로 부상
18년 만에 서울대학교를 다시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공학 교육 현장의 다양성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달라진 공학 생태계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인공지능(AI) 플레이어들이 엔비디아 생태계에 깊숙이 진입하는 한편, 학계도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인재 확보 거점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젠슨 황 "서울대, 여학생이 왜 이렇게 많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린 '빌드 어 클로(Build-a-Claw)'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황 CEO는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린 '빌드 어 클로(Build-a-Claw)'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4월 그의 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이사가 서울대를 찾은 지 약 40일 만이다. 사실 황 CEO가 서울대를 찾은 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7월 '비주얼 컴퓨팅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했고 그로부터 18년 만의 재회다.
당시만 해도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회사에 불과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금과 아예 다른 시대였다"며 "그런데도 황 CEO는 18년 전 강연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중심 컴퓨팅의 한계를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 연산의 핵심 인프라로 떠올랐고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그렇게 세계에서 손꼽히는 CEO가 됐다.
조규진 기계공학부 교수는 "황 CEO가 여학생이 왜 이렇게 많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과거 남자 공학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엔지니어링 교육 현장에 여학생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한국의 모습에 놀랐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누구나 엔지니어링을 하기 좋아졌다고 설명했다"며 "단순 지식보다 상상력과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는 황 CEO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계공학부 로보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5vertake' 팀은 여학생이 과반이다. 앞서 서울대를 찾은 매디슨 황 이사는 이 소식을 접한 뒤에야 강연 요청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CEO의 방문도 그가 학생들과 직접 만나고 싶다는 뜻을 학교 측에 전달하면서 성사됐다. 서울대 관계자는 "아마 매디슨이 젠슨에게 서울대 방문을 추천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상징성 담은 '수저 세트'…서울대에 반한 부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딸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이사가 지난 4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AI 시대 리더십: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황 CEO는 1000명이 넘는 서울대 공학도가 몰린 현장에서 "여러분은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시대"라고 말했다. AI 기술이 산업과 연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과거보다 학생들의 더 많은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황 CEO는 학생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창의적으로 시도하는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며 "특히 한국 학생들의 손재주와 실행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서울대는 '엔비디아 부녀'에게 K기술력의 전통을 보여줄 수 있는 '깜짝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매디슨 황 이사가 서울대를 찾았을 때 수저 세트를 선물하면서 '독극물도 검출하고 살균 효과도 있는, 과거에서 온 피지컬 AI(Physical AI from the past)'라고 설명했다"고 귀띔했다. 한국의 기술 감각이 오랜 생활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선물이었다. 황 이사는 '새로 이사한 집 부엌에 이 수저 세트를 가장 먼저 갖다 놨다'고 전해왔다.
황 CEO는 강연에서도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미래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기계공학·제조·AI·클라우드 역량이 모두 필요한데 한국은 이 모든 것을 갖춘 나라"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한국은 문화·음악·영화·기술을 수출해 왔으며, 여러분이 세계를 여행한다면 사람들은 당신들이 BTS의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예 자신을 'K젠슨'이라 칭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의 경쟁력을 언급하며 "한국은 K팝·K컬처·K드라마·K프라이드치킨까지 가진 특별한 나라"라며 "요즘은 뭐든지 앞에 'K'만 붙이면 된다"고 했다. 이에 객석에 있던 한 학생이 'K젠슨'이라고 외쳤다. 황 CEO는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며 "이제부터 날 K젠슨이라고 불러 달라"고 행사장을 뜨겁게 달궜다.
엔비디아-서울대, '인프라 지원' 등 협력 확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린 '빌드 어 클로(Build-a-Claw)'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황 CEO의 이번 서울대 방문은 이벤트 성격에 그치지 않고, 양측의 협력도 보다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엔비디아는 현재 로봇·AI 교육에 쓰이는 AI 컴퓨팅 장치인 젯슨보드(Jetson Orin Nano Super Dev-kit)를 서울대 연구·교육 현장에 지원하고 있다. 서울대는 올해부터 모터 12개가 장착된 양팔 로봇에 AI 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 젯슨보드가 활용되고 있다. 국내 총판을 맡고 있는 MDS테크와 지난 4월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학계에선 엔비디아와 서울대가 로봇·피지컬 AI 분야 연구 인프라 지원부터 학생 채용 연계까지 파트너십을 점차 확대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양측은 올해 2학기부터 기계공학부 창의공학설계 과목에 엔비디아 딥러닝 인스티튜트(DLI) 교육 과정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 'DGX 스파크' 등 하드웨어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안도 기대가 큰 지점이다. 서울대는 AI 연구에 요구되는 고사양 GPU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인프라 지원으로 확대되면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서울대 고위 관계자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며 "실질적으로 구체화가 이뤄지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 이어 학계도 AI 생태계 위상 달라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삼겹살 음식점에서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엔비디아는 GPU뿐 아니라 AI 반도체·로봇·자율주행·피지컬 AI 등 미래 산업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선 한국의 산업·제조 역량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공학 인재들에 대한 수요도 크다. 이런 측면에서 황 CEO의 이번 방한과 서울대 방문은 한국의 제조·AI·인재 인프라를 하나의 생태계로 엮으려는 전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황 CEO는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에는 로봇공학과 AI 인프라 분야에 정말 큰 기회가 있다"며 "한국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강한 동기부여를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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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서울대 AI연구원장은 황 CEO가 18년 만에 서울대를 다시 찾은 배경에 '다양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에 집중하는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성비나 전공의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여학생들이 성과를 내고 공교롭게 경품도 당첨되고 한 모습들이 좋은 모멘텀을 만들었다"며 "서울대가 엔비디아에 좋은 파트너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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