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원으로 8억 집주인 됐지만
10배 수익에 가려진 빚 5억5000만
정부가 판 깔아준 대출정책의 그늘
정부가 해마다 하는 주거실태조사에는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묻는 항목이 있다. 일단 주거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답한 이가 4, 그렇지 않다는 이는 6 정도다. 필요하다고 답한 이가 첫손에 꼽는 게 대출이다. 집이 있는 이는 주택 구입자금 대출을 꼽은 이가 가장 많았고, 전세 사는 이는 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부채도 자산의 일부인데다 빚내는 것도 개인의 능력으로 보는 시대라지만, 왜 대출을 원하는 이가 가장 많을까. 답변지의 다른 항목이 변변치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제시한 게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공공분양주택 공급, 주택개량 개보수 지원, 주거상담·정보제공 같은 것들이다. 공공임대나 공공분양은 일단 주변에 접해본 이가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택 개보수나 주거상담을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 제시하는 건 다소 멋쩍은 느낌을 준다.
지금이야 집을 사거나 모자란 전세보증금을 충당할 때 은행 대출을 끼는 게 자연스러운 행위지만 불과 한 세대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주택담보대출이 본격적으로 우리 주거문화에 싹트기 시작한 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세대출은 그로부터 10여년 지난 2008년 전후부터다. 외환위기로 은행은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보다는 확실한 담보(주택)를 낀 가계대출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은행 입장에선 든든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전세대출은 물리적 담보물이 없는 상태에서 공적 기관의 보증을 토대로 일으킨다는 점에서 훨씬 인위적이다. 정부가 판을 깔아줬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정책대출 규모도 만만치 않다. 기금에서 일부를 떼어내 직접 대출해주는 것은 물론 이차보전 방식으로 간접대출까지 포함하면 전체 전세대출에서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을 넘는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차보전이란 정책금리와 시중 은행 금리 간 차이를 메워주는 방식으로 정부가 올해 은행에 갚을 돈만 2조원에 육박한다.
집값, 정확히는 땅값이 오르는 거야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맞물린 결과겠지만 근저에 깔린 건 풍부해진 유동성, 즉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이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이나 개별 가구 차원에서 보면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대출이라는 지렛대를 일으켜 자산을 불리는 모양새겠지만 사회 전반으로 보면 부동산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토대로 자본이 집중되는 토지본위제와 다름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수단이 바로 대출인 셈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본 표현 가운데 눈길을 끈 게 정부가 그간 추진했던 주거지원책으로 대출을 늘린 점을 두고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격이라거나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글이었다. 십분 공감한다.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해결책이었겠지만 후과가 크다. 현직 감정평가사로 일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정흔 위원장이 알려준 젊은 부부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나는 여긴다. 자기 자금 8000만원에 1억5000만원 대출을 받아 2억3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 살던 이 부부는 재개발 사업을 거치면서 5억5000만원에 15평짜리 조합원 분양분 아파트를 받아 시세 8억원짜리 집주인이 됐다. 이주비나 계약금·중도금, 나중 전환한 주담대까지 모두 대출로 충당했다. 누군가는 10배 수익이라고 하겠지만 현실은 1억5000만원이던 빚이 5억5000만원이 된 것이다.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답은 쉽지 않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게 승자…"MZ들 주식서 번 ...
건설부동산부 차장 최대열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