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10% 넘은 명목 성장률…물가 폭등 때와 다르다(종합)
"국내 물가 상승 아닌 수출기업 수익성 개선 영향"
수출 디플레이터 23.5% 가파른 상승…내수 2.1% 상승 그쳐
70~80년대 비용상승형 물가 상승 때와 다른 양상
우리나라의 경제 체급을 파악하는 지표인 명목 경제성장률이 올해 1분기 10.5%를 기록했다. 명목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두 자릿수를 넘긴 건 1차 오일쇼크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 있던 1976년 이후 50년 만에 처음이다. 이 같은 급성장의 원인이 국내 물가 상승이 아니라 수출기업의 수익성 개선이라는 점에서 1970~1980년대 당시의 비용상승형 물가 상승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생산량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파는 제품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명목 성장률을 밀어 올린 것이다.
경제 성장의 척도인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는 1.8%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 역시 지난달 전망(2.6%) 대비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명목 GDP 성장률, 50년 만에 두 자릿수 '껑충'…의미는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명목 GDP 성장률(잠정치)이 전 분기 대비 10.5%를 기록했다고 9일 밝혔다.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1976년 1분기(13.0%) 이후 50년 만이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7.1% 성장했는데, 이 역시 1995년 3분기(19.2%) 이후 최고치다.
명목 성장률은 실질 성장률에 물가 변동을 나타내는 GDP 디플레이터, 즉 시장 가격을 반영해 산출한다. 물가 요인을 제거한 실질 성장률이 실제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펀더멘털)를 보여주는 지표라면, 명목 성장률은 국가 경제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1분기 명목 성장률이 높았던 건 구성 항목 중 총영업잉여(기업 이윤-인건비)가 제조업과 금융 및 보험업을 중심으로 전기 대비 17.0% 증가한 영향이 컸다. 인건비를 나타내는 피용자보수도 제조업 임금 상승 영향으로 같은 기간 4.0% 증가했다. 여기에 수출 가격이 오른 것도 명목 성장률 상승을 견인했다. 국내 전반의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수인 GDP 디플레이터는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2.9% 뛰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 기간 내수 디플레이터는 2.1% 상승에 그친 반면, 수출 디플레이터는 23.5% 가파르게 상승했다.
김화용 한은 경제통계2국 국민소득부장은 "올해 1분기부터 분명하게 나타나는 명목 GDP 성장세 확대는 국내 물가 상승이 아닌 우리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데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물가 상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1970~1980년대나 1990년대 당시 명목 GDP와 실질 GDP 격차가 10% 이상 나타났던 때의 '비용 상승형 물가 상승'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실질 GDP 대비 명목 GDP가 많이 오른 가운데 GDP 디플레이터도 같이 올랐다는 건 우리가 생산한 반도체 등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의미"라며 "수출재 가격이 수입재 가격보다 올라 국민 소득이 더 높아지는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질 GDI 13.2% 급증…"성장세 상당 기간 지속될 것"
한 나라 경제가 생산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올해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하며 실질 GDP 증가율(3.8%)을 크게 웃돌았다. 이 역시 반도체 가격 효과다.
김 부장은 "한국은 통상 국제유가 상승 시 교역조건이 악화해 GDI가 GDP보다 덜 증가하는데, 이번엔 반도체 가격이 대표 수입품인 원유 등 에너지 가격 상승 폭을 넘어서면서 GDI가 오히려 GDP를 큰 폭으로 추월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짚었다. 실질 GDI 증가는 소비 및 투자 여력 증가로 해석할 수 있어, 성장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키운다.
김 부장은 "이번처럼 수출·수입 가격이 급변할 때는 경제 상황 판단 시 생산물량 중심인 실질 GDP에서 벗어나 명목 GDP, 실질 GDI 지표를 상호보완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분기 실질 GDP 1.8% 성장…작년 1인당 국민소득 5257만원
가격 요인을 제거한 실질 GDP는 전 분기 대비 1.8% 상승했다. 지난 3월 발표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상향 조정된 수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8% 성장해 속보치를 0.2%포인트 상회했다. 김 부장은 "속보치 추계 시 이용하지 못했던 분기 최종월의 일부 실적치 자료 등을 반영해 설비투자가 1.8%포인트, 민간소비가 0.1%포인트 상향 수정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1분기 실질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면서 올해 연간 성장률 역시 기존 전망(2.6%) 대비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 부장은 "1분기 실질 GDP 0.1%포인트 상향 조정은 연간 성장률을 0.1%포인트 올리는 효과를 줄 수 있다"며 "여타 변화된 조건들 역시 반영돼야 하므로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수정 전망이 8월에 다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기 대비 9.2% 증가해 성장률을 큰 폭 상회했다.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율이다. 실질 GNI가 증가한 것은 교역조건이 개선되고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뺀 것)이 8조2000억원에서 11조6000억원으로 대폭 늘어난 영향이다.
한편 지난해 1인당 GNI는 3월 속보치보다 15만4000원 늘어난 5257만원으로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 달러 기준으로는 3월 속보치보다 108달러 증가한 3만6963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 여파로 달러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김 부장은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 4만달러 달성 가능성은 더 커졌다. 당초 예상했던 2028년보다는 앞당겨질 것으로 본다"면서도 "환율 상황 등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명목 성장률 10%대 관측 무게…거시 건전성 지표 개선 전망
올해 명목 경제 성장률 역시 10%대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렇게 되면 2002년(11.0%) 이후 24년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김 부장은 "기업의 수익성 개선에 의한 명목 GDP 성장률 상승은 정부 재정 부담을 크게 완화하는 가운데 내수 진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기업의 영업이익 확대는 법인세 증가로 이어져 재정 안정뿐 아니라 구조 개혁에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고 연구개발(R&D) 설비투자 확충을 통해 내수 진작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간 10%대 명목 성장률 달성 시 이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가계부채비율 등 거시 건전성 지표도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0%를 달성하고 가계부채 증가율이 올해 정부 목표치인 1.5%를 기록했을 경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8%로 추산된다. 11년 만의 최저치다. 올해 명목 GDP가 12% 증가하면 가계부채 비율은 80.3%까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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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세수 확대 등으로 재정 여력이 커진 정부는 이를 필요 계층에 타깃해 사용하는 데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와 같은 확장적인 정책보다는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일부 기업만 실적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 자산효과의 버블도 경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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