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임상, 전 질환으로
"신약 기업 옥죄는 법차손 손질"

편집자주올 상반기 한국 바이오 기술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와의 조(兆) 단위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산업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계약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실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유의 속도전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 기업들이 빅파마로부터 받는 '기술값'에 견줘 우리 기업들이 받는 돈이 턱없이 낮은 게 특히 눈에 띈다. 바이오 기술은 미래의 국가적 전략자산으로 손꼽힐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쟁국을 넘어 글로벌 선도국의 지위로 뛰어오르려는 중국과의 격차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짚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아시아경제가 이런 현실을 조명하고 그 배경과 대안을 모색한다.

①같은 유망기술인데 선급금은 중국 3분의 1토막


②한국은 1상에서 팔고, 중국은 3상까지 간다

③임상할 돈 모으면 상폐…K-바이오 옥죄는 이중고


④임상 속도 높이고 상폐 규제 풀어야 격차 좁힌다

중국에 '위협'을 받는 한국 바이오 산업이 저변을 넓히고 미래 성장성을 확보하려면 자본시장 원리에 과도하게 매몰된 규제와 임상 제도를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약 개발 비용을 손실로 묶어 상장폐지로 내모는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요건은 산식부터 바로잡고, 임상의 속도전을 가로막는 규정을 손질해 '임상력' 자체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16일 금융당국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핵심 개혁 과제로는 임상 등 연구개발(R&D) 비용을 법차손 산정에서 제외·상쇄하는 산식 보정과, 환자가 자택에서 참여하는 분산형 임상시험(DCT)의 전 질환 확대가 특별히 손꼽힌다.

법차손 '폐지' 아닌 '보정'…M&A 회수시장 육성 병행론

[韓-中 바이오 명암]④임상 속도 높이고 상폐 규제 풀어야 격차 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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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23년 발간한 '기술평가 특례상장 바이오헬스 기업에 대한 상장유지 요건의 적정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법차손이 10억원을 넘는 기술특례 바이오헬스 기업은 약 84%로 일반상장 바이오헬스 기업(약 22%)을 크게 웃돈다. 보고서는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해 상장 3~5년차에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이 기술특례 바이오헬스 기업에서만 나타난다며 법차손 요건의 완화 검토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 바이오텍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려면 임상 일정을 늦추거나 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며 "임상에 돈을 쓰지 못하게 막는 잣대가 기술의 몸값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구조"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현재 법차손 잣대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한계기업이 증시에 남아 투자자 피해를 키우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을 지켜야 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법차손 요건을 무턱대고 풀면 자칫 '좀비기업'의 연명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신약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손실 규제의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차손 잣대 자체를 없애지는 않더라도, 신약 개발의 특성을 산식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개선은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제기된다. 제약사 감사 경험이 있는 한 회계사는 "신약 개발비는 미래 자산을 만드는 투자성 지출인데 현행 잣대는 이를 단순 영업 부실과 같은 손실로 취급한다"며 "손실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 법차손 보정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현행 3년인 법차손 유예기간을 연장하거나 예외를 두는 방안이 거론돼 왔다. 금융감독원이 감독지침을 통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임상 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의 입증 부담이 커 현장 활용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협상력 만드는 플랫폼 기술…"AI·의료데이터, 한국의 숨은 무기"

임상력 강화의 출발점으로는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고 자택에서 원격으로 참여하는 분산형 임상시험(DCT)의 대상을 전 질환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꼽힌다. 미국 터프츠대 약물개발연구센터(CSDD)가 60여 개 임상을 분석한 결과 DCT를 적용한 임상은 환자 등록 속도가 200% 빨라지고 비용은 50% 줄었다. 임상 비용이 낮아지면 법차손 부담도 함께 줄게 된다.


한국은 현재 우울증·폐질환·수면무호흡증·비만 등 4개 질환의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추진하는 메가특구법에 DCT 규제특례를 담아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송영주 법무법인 태평양 경제고문은 최근 한 행사에서 "대만은 이미 분산형 임상을 허용하고 미국은 더 앞서 있는데 한국은 최근에야 제도 도입에 나섰다"며 늦은 출발이지만 분산형 임상이 국내 임상의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韓-中 바이오 명암]④임상 속도 높이고 상폐 규제 풀어야 격차 좁힌다 원본보기 아이콘

여기에 단일 후보물질이 아닌 플랫폼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협상력의 기반을 닦는 기업들의 노력이 가미된다면 '기술 개발 - 합당한 가치 산정 - 이에 따른 재투자 및 산업 저변의 확대'라는 선순환의 구조가 비로소 갖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알테오젠의 피하주사 제형 변경 플랫폼 'ALT-B4', 에이비엘바이오의 혈뇌장벽 투과 플랫폼 '그랩바디-B'가 플랫폼 기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박순재 알테오젠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하나의 기술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전할 수 있는 것이 플랫폼의 힘"이라고 말했다. 알테오젠은 ALT-B4로 6년간 10조원이 넘는 기술이전 계약을 따냈다. 검증된 플랫폼은 빅파마를 줄 세워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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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정비와 함께 한국이 가진 데이터 자산을 임상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전 국민의 97%가 가입해 약 5000만명의 진료·검진·청구 기록이 단일 기관에 쌓이는 국민건강보험 데이터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을 결합하면 임상 최대 병목인 환자 모집을 줄여 글로벌 제약사를 끌어들이는 '한국형 임상 테스트베드'로 차별화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신약을 자체 개발해 미국 직판으로 수조원대 매출을 올린 한 제약사 임원은 "국가가 AI 인프라를 제대로 깔아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임상에 맞는 환자를 빠르게 찾아내는 AI 기반 임상 플랫폼을 갖출 수 있다"며 "중국과 물량으로 경쟁하기보다 한국이 특화한 임상 생태계를 만들어 글로벌 테스트베드가 되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j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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