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급금 가른 '임상 단계'
중국 모집 속도 최대 5배

편집자주올 상반기 한국 바이오 기술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와의 조(兆) 단위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산업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계약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실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유의 속도전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 기업들이 빅파마로부터 받는 '기술값'에 견줘 우리 기업들이 받는 돈이 턱없이 낮은 게 특히 눈에 띈다. 바이오 기술은 미래의 국가적 전략자산으로 손꼽힐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쟁국을 넘어 글로벌 선도국의 지위로 뛰어오르려는 중국과의 격차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짚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아시아경제가 이런 현실을 조명하고 그 배경과 대안을 모색한다.

①같은 유망기술인데 선급금은 중국 3분의 1토막


②한국은 1상에서 팔고, 중국은 3상까지 간다

③임상할 돈 모으면 상폐…K-바이오 옥죄는 이중고


④임상 속도 높이고 상폐 규제 풀어야 격차 좁힌다

빠르고 싼 임상…중국 몸값 높인 원동력

[韓-中 바이오 명암]②한국은 1상에서 팔고, 중국은 3상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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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빠르게 임상을 후기 단계로 진행시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임상시험 환자 모집 속도는 후기 임상 기준으로 볼 때 미국·유럽보다 2~5배 빠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맥킨지는 올해 초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신약 발굴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신청까지 걸리는 초기 단계가 세계 평균보다 50~70% 빠르게 이행된다고 분석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임상시험의 39%가 중국에서 진행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속도의 차이는 최근 빅파마가 임상 위험이 어느 정도 해소된 후기 자산에 거래를 집중하는 추세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한 바이오텍 대표는 16일 "중국 기업은 자체 자금과 빠른 임상으로 후기 데이터를 쌓은 뒤 '이 가격이 아니면 다른 곳과 거래한다'며 버틸 수 있지만 초기 자산을 들고 가는 한국은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많은 빅파마가 우선적으로 중국행(行)을 고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펑닝 맥킨지 중화권 생명과학부문 파트너는 최근 미국 바이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빅파마들의 라이선스 계약에는 중국 기업의 속도와 비용 경쟁력, 즉 더 빨리 더 싸게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기술 거래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년 새 8%에서 30%로 뛰었다고 덧붙였다.

후기 데이터가 만든 협상력 격차

한국 바이오텍 대부분은 임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길어야 임상 2상까지만 끌고 간 뒤 기술을 넘기는 실정이다. 정부도 이를 구조적 문제로 바라본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1500억원 규모의 임상 3상 특화펀드를 따로 조성한 것도 자금이 부족한 기업들이 '데스 밸리'로 불리는 임상 3상을 넘지 못해 조기에 기술수출로 돌아서는 사례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은 57개에 불과하다.


자본이 있어도 글로벌 시판까지 직접 완주한 경험은 극소수다. 미국·유럽의 복잡한 의료보험 구조와 병원 영업망은 신규 진입자에게 높은 장벽이어서 직접 판매보다 빅파마에 넘기고 로열티를 받는 편이 합리적 선택으로 간주된다.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미국 자회사를 통해 파는 SK바이오팜, 바이오시밀러 짐펜트라로 미국 판매망을 구축한 셀트리온 정도만이 직접 시판까지 도달한 극소수 사례로 손에 꼽힌다. 그마저도 현지 법인 설립과 영업 인력 확보에 수년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쏟은 결과다.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파는 것이 전략이라기보다 '강제된 선택'에 가깝다는 의미다.

[韓-中 바이오 명암]②한국은 1상에서 팔고, 중국은 3상까지 간다 원본보기 아이콘

이런 흐름이 누적되며 '한국은 임상 강국'이라는 전통적인 평가마저 흔들리고 있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은 2023년 4위에서 2024년 6위로 떨어졌다. 2017년부터 세계 1위를 지켜온 서울도 베이징에 밀려 도시 순위 2위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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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넘기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후기 임상을 직접 끌고 갈 역량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고, 전반적인 기술개발의 역량이 훼손되는 악순환이 구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임상시험센터 교수는 "한국의 기업들과 산업적 토양이 임상을 끝까지 책임지고 끌고 갈 만한지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평가가 점점 더 냉정해지는 추세"라면서 "압도적인 속도전으로 무장한 중국이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이런 추세는 더 짙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연 기자 j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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