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2028년에는 오디컴퍼니 작품 세 편이 동시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브로드웨이 흥행을 이끈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이제 다음 성공을 준비하고 있다. 세 차례 실패 끝에 얻은 한 번의 성공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와 더 큰 무대를 안겨줬다. 현재 브로드웨이 개막을 목표로 신작 두 편을 개발 중인 그는 한국 뮤지컬의 글로벌 진출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오디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신 대표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개츠비의 성공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저를 찾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며 "성공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직접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대한 개츠비' 누적 매출 1.2억달러…브로드웨이서 위상 변화 체감
신 대표는 현재 미국 극장 두 곳의 제안을 받아 2027년과 2028년 브로드웨이 개막을 목표로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장기 공연 중인 위대한 개츠비까지 포함하면 2028년에는 오디컴퍼니 작품 세 편이 동시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그림도 가능하다. 신 대표가 고통스러웠던 세 차례 실패의 경험에서 얻은 결과다. 2009년 '드림걸즈'는 브로드웨이 진출에 실패했고, 2014년 홀러 이프 야 히어 미'와 2015년 '닥터 지바고'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으나 각각 4주, 3주 만에 막을 내렸다. 세 번의 실패는 쓰라렸지만 브로드웨이 시장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결실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2024년 4월 공식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달 24일 기준 868회 공연, 누적 티켓 판매액 1억2675만달러를 기록했다. 평균 객석 점유율은 90%를 웃돈다. 2023~2024시즌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신작 뮤지컬 15편 가운데 2년 이상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와 '더 아웃사이더스' 두 편뿐이다.
신 대표는 "브로드웨이에서 2년은 중요한 기준점"이라며 "그 정도는 돼야 손익분기점이 보이고 투어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흥행은 곧바로 투어 시장으로 이어졌다. 올해 1월 출범한 북미 투어 프로덕션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시작으로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1~3주 가량 공연 중이다. 현재 내년 8월까지 북미 투어 일정이 잡혀있다. 신 대표는 "일본, 독일, 호주에서도 공연 날짜를 조율 중"이라고 했다.
브로드웨이 성공은 신 대표의 위상도 바꿔놓았다. 그는 "예전에는 제가 먼저 문을 두드려야 했다면 지금은 극장과 창작진이 먼저 연락해온다"며 "개츠비의 성공은 제게 매우 강력한 힘이 됐다"고 돌아봤다.
신작 외부 자본비중 70%로 확대…"정부 미국식 비영리 극장 지원해야"
현재 개발 중인 신작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신 대표는 브로드웨이 개막을 준비 중인 2개 작품과 관련해 "한 작품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고전 소설이, 또 다른 작품은 최근 상영한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며 "뮤지컬을 잘 하지 않는 뉴욕의 극장 한 곳과 샌디에이고의 유서깊은 극장에서 제안을 받아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창작진도 늘었다. 신 대표는 "작품 개발 과정에서 더 뛰어난 창작진이 합류하고 있다"며 "지금 최고의 창작진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바쁜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흥행 성과는 투자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위대한 개츠비는 오디컴퍼니와 해외 투자자들이 제작비를 절반씩 부담했지만 앞으로는 외부 투자자 비중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 대표는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향후 작품에서는 외부 자본 비중을 70% 수준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대표는 "내년 겨울쯤 위대한 개츠비의 사전제작비 2500만달러를 회수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후 운영비를 뺀 금액이 비로소 수익으로 잡힌다"고 설명했다. 현재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극장 대관료, 출연료 등으로 매주 80만~100만달러 운영비가 소요된다. 주간 매출 100만달러 달성 여부는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위대한 개츠비의 최근 1주일 입장권 판매액은 98만6007달러였다.
신 대표는 한국 뮤지컬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창작 지원 방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 이후 정부는 뮤지컬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렸다. 이에 대해 신 대표는 "예산 증액 자체는 매우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정부가 작품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창작 생태계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비영리 극장 시스템이다. 현재 작업 중인 뉴욕과 샌디에이고의 극장들 역시 기업 후원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극장이다. 이들은 창작자들에게 워크숍과 트라이아웃 기회를 제공하고 충분한 수정 과정을 거친 작품을 상업 프로듀서와 연결해 브로드웨이 진출을 돕는다.
신 대표는 이 같은 비영리 기관 중심의 공연 개발 인프라가 구축돼야 창작자들의 실패 위험을 줄이고 건강한 창작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한국에도 우란문화재단이라는 좋은 모델이 이미 있다"며 "정부가 작품의 투자자가 되기보다 이런 비영리 기관을 육성하는 후원자가 되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수기 수익 포기…신작 '워더링 하이츠' 완성도 올인
그의 이같은 철학은 내년 1월 국내 초연을 앞둔 창작뮤지컬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에도 반영돼 있다. 워더링 하이츠는 국내에 '폭풍의 언덕'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신 대표는 이 작품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장기 트라이아웃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12월 한 달 동안은 제작진과 일부 관계자만 초청해 매일 트라이아웃 공연을 진행하고, 현장 검증을 바탕으로 작품을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한 뒤 1월 정식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12월이 공연계 최대 성수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익을 포기하는 결정이다. 신 대표는 "무대 완성도를 높이면 흥행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자신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브로드웨이에서 성과를 낸 뒤 영국과 한국에서도 잇달아 개막했다. 한국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신 대표는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며 "참패였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2028년 위대한 개츠비 한국어 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대본 등을 수정해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원작소설의 주제를 좀 더 깊이있게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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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20세기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대표는 소설의 주제의식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까 깊이 고민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무대미학에 대중성에 좀더 비중을 뒀다. 신 대표는 "문학을 중시하는 평론가들로부터 좋지 않은 비평을 받은 측면도 있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무대임을 보여줬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원작 소설을 다시 보면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며 "소설의 주제의식을 다 담아내는 것은 뮤지컬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중에 연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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