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문제 No, 참정권 달린 일"…충돌 대신 연대 외친 2030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 나흘째 지속
충돌 자제하고 '재선거' 구호 외치며 시위
전기차 끌고 와 무료 충전, 나눔 움직임 활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나흘째 계속되고 있다. 사태 초기에는 일부 유튜버를 비롯한 강경 보수 세력이 부정선거 주장을 두고 결집했지만, 점차 2030세대를 중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실책과 참정권 훼손 문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색이나 진영이 아닌, 국민 기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민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등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고 있다. 박호수 기자
8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일부 시민들은 경기장 옆에 마련된 공간에서 담요와 돗자리를 두른 채 쪽잠을 자기도 했다. 서울시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개표소가 설치된 이곳 경기장 일대에는 8000~8500명이 집결했다. 주말 사이 경찰의 비공식 추산 3만명을 넘기기도 했다.
'부정선거' 피켓을 들고 선 남궁영선씨(31)는 "좌우를 떠나 선거의 과정 자체가 중요한데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까이 사는데 양심적으로 나와봐야 하지 않나 해서 현장으로 왔다"고 말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피켓을 만들던 대학원생 최예령씨(26)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이번에는 뜯어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민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등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고 있다. 박호수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주말 동안 밤샘 시위가 이어지면서 현장 곳곳에선 보조배터리, 물, 에너지바, 구강청결제 등 '무료 나눔' 움직임도 활발했다. 순대 트럭이 시민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줬고, 전기차를 끌고 나온 일부 시민들은 시위에 참여 중인 이들이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콘센트를 연결했다. 현장에 동원된 관광버스에는 유권자를 위한 냉난방 쉼터까지 마련된 모습이었다. '부정선거 사형' 등 일부 과격한 표현이 쓰이기도 했지만 2030세대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대한민국 재선거로 지키자'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등 연대를 강조하는 팻말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를 보고 처음으로 '정치 현장'에 나왔다는 시민들도 많았다. 서초구 주민 최은영씨(38)는 "탄핵 집회에도 나가본 적 없고, 사실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본 게 처음"이라며 "정치색을 떠나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참정권을 빼앗긴 게 개탄스러워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왔다는 김희성씨(22)는 "부모님이 용돈까지 챙겨주셔서 친구 셋과 차를 끌고 올라왔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아 놀랐는데, 그만큼 우리나라 미래가 밝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연대'를 거듭 강조했다.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 물과 김밥을 건네거나 근무 교대에 들어가는 경찰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앞서 취재기자가 일부 과격 시위대에 의해 끌려 나가거나 경찰의 진압 과정에 불만을 품고 충돌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날 현장에선 불필요한 충돌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젊은 시민들을 지켜보던 70대 어르신도 "경찰이랑 싸우러 나온 게 아니다"라며 "고생하는 사람들을 두고 공안이라고 하면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개표소를 둘러싼 시민들의 움직임은 명확한 주최자가 없는 집단적 행동이라는 점에서도 특이점을 보이고 있다. 보수 단체가 주최하고 장년층이 주축이 되는 '광화문 집회'와는 결이 다르다. 이 때문에 주말 사이 강경 보수 세력과 다른 시민들 간 언쟁을 벌이는 과정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기도 했다. 청년들은 성조기·이스라엘 국기 등을 판매하러 나온 상인들의 행동을 지적했고, 일부 보수 고령층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며 성조기를 내려달라는 요구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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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별다른 대치 없이 질서 유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일부 시위대가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신상을 공유하고, '중국 공안'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문제가 있었지만 이날 개표소 앞에선 '평화를 지켜달라' '경찰의 교대를 존중하라' 등 지침이 공유됐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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