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체급 한참 뒤처진 원화 가치 수수께끼

6월 들어 평균 1522.4원…야간장서 1561.5원 치솟기도
달러 대비 원화 3.48% 내려…태국 바트보다 큰 낙폭
국내 주식시장 급등 속 외국인 리밸런싱+차익실현 물량 영향
강달러 불러온 중동 전쟁과 고유가+美 고금리 장기화 우려도
미 관세 재부각+대미 직접투자 심리 자극 영향도 작용

이달 원·달러 환율 평균이 1520원을 훌쩍 넘었다. 외환위기 이후 28년여 만에 최고치다. 장 중 고가는 1560원을 뛰어넘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레벨을 경신했다. 최근 원화 가치 하락 폭은 전 세계 주요국뿐 아니라 태국 바트 등 신흥국보다 더 크다.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은 한국이 역대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경제 체급을 탄탄히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전개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직접적으로는 최근 국내 증시 급등에 우리 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나가는 외국인의 영향이 크다. 중동 전쟁이 석 달 넘게 이어지며 이 지역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 부각된 점도 원화 절하 폭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고유가 장기화와 미국의 고용 호조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긴축 전환 우려를 자극, 강달러를 지지하면서 상대적 원화 약세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대미 투자 확대와 미국의 관세 부과 우려 재확대가 달러 보유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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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평균 1522.4원…외환위기 후 28년 4개월來 최고치

7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5일까지 주간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522.4원이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1626.8원) 이후 28년 4개월 만의 최고치다. 6월이 아직 한 주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5일 이후 3주째 1500원 위에서 점차 레벨을 키우고 있다. 지난 5일 야간 거래(5일 오후 3시30분~6일 오전 2시)에선 장 중 1561.5원까지 올랐는데, 이는 2009년 3월6일(장중 고가 1597.0원) 이후 17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올해 2분기 들어 지난 5일까지 평균 환율(1491.0원) 역시 1998년 1분기(1596.9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연간으로 봐도, 올해 들어 지난 5일까지 평균 1477.1원으로, 연평균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던 지난해(1422.0원) 기록을 크게 웃돌고 있다.

최근 원화 약세는 주요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달 들어 지난 6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3.48% 하락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3.54%)에 이어 주요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낙폭이 컸다. 스위스 프랑(-1.93%), 유럽 유로화(-1.21%), 일본 엔화(-0.65%)뿐 아니라 칠레 페소(-2.71%), 태국 바트(-1.10%) 등 신흥국 통화보다도 큰 하락률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이달 1.2%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컸다. 올해 들어 지난 5일까지를 살펴봐도, 주요 통화 중 원화 가치 하락률(-6.48%)은 손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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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금 흐름, 환율 미치는 영향력 크게 확대

이 같은 원화의 두드러진 약세는 대내외 요인과 구조적 변화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특히 국내 자금 흐름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결과라는 진단이다. 대표적인 게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팔자' 행진이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18조원 이상 주식을 팔아치웠다. 6월 들어 4거래일간만 봐도 18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코스피 단기 급등으로 차익 실현 물량과 국내 주식 비중 조정(리밸런싱) 수요가 겹친 결과다.


문제는 시가총액 급증으로 반도체 업종 중심 리밸런싱 수요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전규연 하나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연방 세법에서 법인세를 감면받을 수 있는 적격투자회사(RIC) 지위를 유지하려면 단일 종목 비중이 25% 미만이어야 하며, 5% 이상 종목 합산이 총자산 가치의 50% 미만이어야 한다"며 "리밸런싱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토대로 외국인 자금이 재차 유입돼야 환율 상승 압력이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 중반부터 순대외자산국으로 전환됐다. 대외 자산 증가 폭이 부채 증가 폭을 웃돈 결과다. 최근 들어 덜 부각되긴 했으나 가계 부문에서 미국 주식 중심으로 해외 자산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 역시 구조적인 달러 수요 확대 요인으로 꼽힌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민간 주도의 해외 자산 배분 확대는 원화 약세 압력의 상시적 배경 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국제수지 금융계정상 1~4월 내국인의 해외 주식투자는 334억달러 증가했고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는 약 436억달러 감소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자본수지에서 대규모 유출이 발생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연결되고 있다"며 "이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금리차나 경상수지보다 자본 흐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라 공공기관 차량 5부제가 홀짝제인 '2부제'로 강화된 지난 4월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직원들이 운전자들에게 2부제 시행 안내를 하고 있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라 공공기관 차량 5부제가 홀짝제인 '2부제'로 강화된 지난 4월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직원들이 운전자들에게 2부제 시행 안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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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 불러온 중동 전쟁과 고유가+美 고금리 장기화 우려

대외 불확실성에 강달러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원화의 상대적인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미국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점 등이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 원화는 유가 상승 국면에서 달러 대비 약세 압력이 높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월 말 1420원대까지 내렸던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직접적인 동기는 2월 말 발생한 중동 전쟁과 이로 인한 국제유가 폭등이었다"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특히 중동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 부각되며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 절하 폭이 크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장기화는 미국 인플레이션 우려를 높이며 강달러 지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고유가가 에너지 물가를 자극하면서 미국 기대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국제유가(WTI)가 배럴당 90달러를 지속해서 웃돌면서 오는 10일 발표되는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4%를 넘을 것이라는 게 시장 시각이다. 미국 고용이 완만한 흐름을 보이면서 경기의 상대적 우위가 공고해지고 있다는 점도 인플레이션 우려에 무게를 두게끔 하고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은 Fed의 통화 긴축 전환 기대를 자극, 금리 인상 기대를 키운다. 이로 인해 강달러 압력 역시 커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5일 발표된 미국 5월 고용 상황이 예상 밖의 호조를 보이자 연내 금리 인상 전망이 힘을 받으면서 달러인덱스는 2개월 만에 100선을 넘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3개월 연속으로 고용 안정 시그널이 강화됐다. 신규 고용이 강하게 반등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부분은 고용 증가 업종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당분간 Fed는 전쟁 발 인플레이션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확보된 상황"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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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부각되는 美 관세 이슈…대미 직접투자 심리 자극 영향도

미국 관세 긴장감이 재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의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 수입을 제대로 차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과 영국 등에 10% 관세를 적용하고, 한·중·일 등 이를 원천 금지하는 법적 장치가 부족한 국가 제품에는 1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통상당국 긴장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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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약정 역시 원화 수급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지난해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춘 바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대미 직접투자 비중이 지속해서 늘어나면서 미 달러의 국내 공급 유인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이코노미스트 역시 "아직 본격적으로 투자가 집행되기 전이지만 은연중에 외환시장 참여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며 "미국 투자를 약정한 기업에서 최근 수출 확대에 따른 달러 유입이 크게 늘었다고 한들, 원화로 환전해 국내로 자금을 들여올 유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투자가 시작되면 대규모 달러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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