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분실
美법원 "증거 관리 중대 결함"
미국에서 13세 딸을 차에 태운 성범죄 혐의자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아버지가 살인 혐의 재판을 앞두고 법정에 서지 않게 됐다. 사건의 핵심 장면을 담았을 수 있는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가 수사기관의 관리 부실로 사라지면서다.
아칸소주 로노크 카운티 보안관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 에런 스펜서.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앞둔 상태에서 지난 3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현직 보안관을 꺾고 본선에 진출했다. 연합뉴스=AP
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아칸소주 특별 순회법원은 에런 스펜서에 대한 2급 살인 혐의를 기각했다. 랠프 윌슨 주니어 판사는 결정문에서 "법 집행기관의 행위가 너무나 중대하게 잘못돼 사건 기각이 정당화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유무죄 판단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증거 보존 실패로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됐는지를 따진 절차적 판단이다.
스펜서는 2024년 10월 8일 아칸소주 로노크 카운티에서 마이클 포슬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포슬러는 당시 67세였고, 스펜서의 13세 딸을 상대로 한 다수의 성범죄 혐의로 이미 기소돼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였다.
사건은 한밤중 딸이 사라지면서 시작됐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스펜서는 개가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딸의 방에서 아이가 없어진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딸을 찾아 차를 몰고 나갔고, 얼마 뒤 포슬러가 운전하는 트럭 조수석에 딸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펜서는 포슬러의 트럭을 도로 밖으로 몰아세웠고,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는 포슬러에게 총을 쏜 뒤 911에 전화해 자신이 총격을 가했다고 신고했다.
검찰은 스펜서가 포슬러를 추격하는 동안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고, 총격은 계획적 살인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펜서 측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며 정당방위와 가족 보호를 주장해왔다. 스펜서 측은 총격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재판의 흐름을 바꾼 것은 포슬러의 트럭에서 발견된 블랙박스였다. 현장에 출동한 로노크 카운티 보안관실 형사는 포슬러의 트럭에서 카메라를 떼어냈지만 곧바로 증거물로 등록하지 않았다. 카메라는 증거물 보관실이 아니라 형사의 개인 사무실에 놓였고,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내부 설정이 초기화됐다. 이후 포렌식 검사를 위해 카메라가 아칸소주 검찰총장실로 보내졌을 때, 수거 당시 들어 있던 메모리카드는 사라진 상태였다.
스펜서 측은 이 영상과 음성이 총격 직전 상황, 포슬러의 위협성, 스펜서가 느낀 공포의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객관 증거였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판사는 수사기관이 자체 증거 관리 규정을 어겼고, 메모리카드의 존재와 보존 과정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점을 중대하게 봤다.
현지 매체 잉글랜드 데모크랫은 결정문에 "정책과 절차 위반의 패턴을 보여주며 은폐처럼 보이게 한다"는 판단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스펜서 사건은 형사 사건을 넘어 지역 선거 이슈로 번졌다.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앞둔 상태에서 로노크 카운티 보안관 선거에 출마했고, 지난 3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현직 3선 보안관을 꺾고 후보로 선출됐다. 선거 과정에서 그는 "법과 사법 시스템이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아동 성범죄 대응 전담팀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스펜서 측 변호인은 법원 결정 뒤 "이 가족 누구도 다시 법정에서 이 끔찍한 일을 되살려야 해서는 안 된다"며 "그는 아이를 보호했다는 이유로 애초에 기소돼선 안 됐다"고 밝혔다. 스펜서도 성명을 내고 "이 장이 끝난 데 감사한다"며 "이제 가족과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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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법원 결정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펜서는 오는 11월 로노크 카운티 보안관 선거 본선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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