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DNA 추적…벨루가 번식 패턴 분석
수컷·암컷 모두 생애 동안 짝 바꿔
근친교배 줄이고 집단 건강 지켜

편집자주지금 먹으면 하나, 기다리면 두 개. 아이들의 선택을 지켜본 마시멜로 실험을 기억하시나요? 단순한 연구는 때로 삶을 보는 방식을 바꿉니다. 실험 데이터로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읽어봅니다.

요즘 연애 관찰 프로그램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나는 SOLO',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비슷한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는데, 관전 포인트는 출연자들이 만들어가는 미묘한 관계와 감정선입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솔로지옥에 출연한 최미나수씨는 여러 이성에게 느끼는 호감을 솔직하게 드러내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헷갈리게 만드는 이른바 어장관리로 '어장 빌런'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연에는 여러 상대와 관계를 맺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활용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북극해에 사는 흰고래(벨루가)입니다. 벨루가는 한 짝과 평생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여러 상대와 번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솔로지옥에 출연한 최미나수. 넷플릭스

넷플릭스 프로그램 솔로지옥에 출연한 최미나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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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 연구진이 13년에 걸쳐 알래스카 브리스틀만에 서식하는 벨루가 623마리의 DNA를 분석한 결과, 수컷과 암컷 모두 생애 동안 여러 상대와 번식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짝 바꾸기'가 단순한 번식 습관이 아니라 근친교배를 줄이고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일에 싸인 사생활, DNA로 추적

벨루가는 북극과 아북극 해역에 서식하는 흰고래입니다. 그간 벨루가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있었습니다. 벨루가의 수명은 90년 정도인데, 대부분의 삶을 빙하가 떠다니는 북극의 바다에서 보내는 탓에 야생에서 행동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구진은 당초 벨루가 역시 다른 일부 포유류처럼 소수의 강한 수컷이 많은 암컷과 짝짓기하는 구조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수컷 벨루가는 암컷보다 몸집이 크고 암컷은 몇 년에 한 번만 새끼를 낳기 때문입니다.


벨루가. 언스플래쉬

벨루가.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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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 결과…수컷도 암컷도 '짝 바꾸기'

하지만 유전자 정보(DNA)가 보여준 그림은 달랐습니다. 연구 결과 수컷뿐 아니라 암컷 역시 생애 동안 여러 상대와 번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형제·자매 관계의 새끼들을 조사해보니 부모를 모두 공유하는 경우보다 아빠 또는 엄마만 같은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수컷 사이에는 번식 성공률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부 수컷이 다른 수컷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남겼습니다. 다만 연구진이 예상했던 것처럼 극소수 수컷이 대부분의 번식을 독점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암컷들의 행동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여러 번식기에 걸쳐 서로 다른 수컷과 새끼를 낳는 모습이 관찰된 건데, 연구진은 '위험 분산(bet-hedging)' 전략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특정 수컷에게만 번식을 맡겼다가 유전적으로 불리한 결과가 나타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2000마리뿐인데…근친교배 적어

연구진이 가장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브리스틀만 벨루가 개체군은 약 2000마리 규모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집단은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고 근친교배 위험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벨루가는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근친교배 흔적도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그 이유로 '짝 바꾸기' 행동을 꼽았습니다.


여러 상대와 번식하면 특정 혈통에 유전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까운 친척끼리 다시 짝짓기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집단 전체의 유전적 다양성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벨루가. 픽사베이

벨루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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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능' 벨루가가 선택한 생존 전략

물론 모든 벨루가 집단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진은 지역에 따라 수컷과 암컷의 몸집 차이가 다르고 사회 구조도 달라질 수 있어 번식 전략 역시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벨루가는 7~8살 아이 (IQ 70~80) 수준의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로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벨루가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거울 자아 인식(mirror self-recognition) 능력은 인간을 포함해 소수의 동물에게만 있는 고도의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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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는 유연한 번식 전략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지켜온 벨루가의 영특한 생존 방식을 보여줍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 시장의 오래된 격언이 생각납니다. 분산 전략은 투자에서도, 생존에서도 유효한 말인 것 같습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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