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자동차 전시장에 줄 선 사람들…"제가 1등입니다" 뜨거운 '한 표의 열기'[르포]
"정당보다 일 잘하는 사람"…생활 공약 눈길
빵집·웨딩홀·전시장…일상 곳곳 투표소로
첫 투표 청년부터 80대까지…저마다 한 표
투표용지 7장 넘어…"기표 전 한 번 더 확인"
"배가 고파서 돈만 벌 때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몰랐지.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
3일 오전 5시50분께 서울 광진구 능동 기아자동차 대공원대리점에 마련된 능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이날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본투표가 진행됐다. 박호수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본투표가 시작된 3일 오전 6시께 서울 광진구 능동 제3투표소(기아자동차 대공원대리점). 투표를 마치고 나온 박모씨(72·남)는 "제가 오늘 1등으로 투표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동대문구에서 40년째 장사했다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한 표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 1만4288곳 투표소에는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유권자들의 발길이 새벽부터 이어졌다.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오르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시민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한 표를 행사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3일 오전 6시께 서울 중구 중림동 제2투표소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이른 아침 투표권을 행사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지어 입장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투표소가 점차 활기를 띠면서 시민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지역 현안으로 향했다. 정당이나 이념보다 후보의 행정 경험과 생활 밀착형 공약을 중요하게 봤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서울 중구 중림종합사회복지관에 마련된 중림동 제2투표소에서 네 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고모씨(33·여)는 "후보들의 정책을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다"며 "결국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고 설명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인 최모씨(52·남)도 "공약집을 보니 중앙 정치 이야기보다 골목길 정비나 일자리 같은 생활 문제에 눈길이 갔다"며 "실제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대학생 박종민씨(24·남)는 "동네 살림을 맡는 사람들이니 정치색보다 실제로 발로 뛰며 일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다.
빵집·웨딩홀·전시장까지…일상 공간이 투표소로
이날 유권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빵집과 자동차 전시장, 웨딩홀 등 생활 공간에 마련된 이색 투표소였다. 평소 신차가 전시되던 서울 광진구 자동차 전시장은 이날 주민들의 투표소가 됐다. 이곳에서 만난 윤병수씨(66·남)는 "오후에 일정이 있어 아침 일찍 왔는데 투표소와 자동차가 같이 있으니 이색적이었다"며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이 뽑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기대했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벨라루체웨딩홀에 마련된 휘경제1동 제3투표소에서는 정승모씨(80·남)가 "사전투표보다 본투표가 마음이 편해 시간을 맞춰 왔다"며 "결혼식장이라 시설도 좋고 접근성도 좋아 만족스럽다"고 웃었다. 서울에선 강북구 수유동의 베이커리 '라라브레드'와 강서구 서울형키즈카페 시립화곡점, 송파구 송파책박물관 키즈스튜디오 등도 하루 동안 주민들의 한 표를 받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평소 빵을 고르거나 아이들이 뛰놀던 공간이 이날만큼은 투표소 역할을 맡았다.
한 표에 담긴 생각들…투표소 곳곳 작은 해프닝도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 가운데는 선거 제도와 투표 방식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성모씨(68·남)는 "사전투표율이 역대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라며 "본투표가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덕훈씨(35·남)는 "사전투표 제도를 보완하고 지방선거에서 외국인 투표권 관련 기준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성동구 성수고등학교에 마련된 성수1가2동 제2투표소에는 투표를 마친 뒤 인근 성수동과 서울숲으로 나들이를 떠나려는 젊은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생애 첫 지방선거 투표를 마친 대학생 김모씨(22·여)는 "첫 지방선거인데 투표용지가 생각보다 많아 긴장됐다"고 웃었다.
김씨는 최근 선거철 연예인들의 옷 색깔이나 손동작을 둘러싼 정치색 논란을 의식해 일부러 무채색 옷차림으로 투표소를 찾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치에 무관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거도 공부라고 생각해 여행을 가기 전 가족들과 함께 일찍 나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대학교 재학생 박모씨(20)는 "생애 첫 투표를 마쳤다"며 "거창한 정치 얘기 보단 저를 비롯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표를 던졌다"고 했다.
투표소 곳곳에서는 소소한 해프닝도 이어졌다. 앞서 동대문구 벨라루체웨딩홀 투표소에서는 한 어르신이 사용 중인 기표소 커튼을 무심코 열었다가 선거사무원의 안내를 받고 다른 기표소로 이동했다. 성동구 성수고등학교 투표소에서는 한 젊은 유권자가 투표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남기려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투표소 안에서는 촬영할 수 없다"는 안내를 듣고 머쓱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최대 7장 투표용지…"기표 전 확인하세요"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벨라루체웨딩홀에 마련된 휘경제1동 제3투표소에서 선거사무원이 고령 유권자에게 투표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이날 투표소에서는 일부 고령 유권자들이 여러 장의 투표용지와 기표 순서를 다시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박호수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번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지역 유권자는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교육감,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을 선출하기 위해 최대 7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지는 지역은 투표용지 1장이 추가된다. 투표용지가 여러 장이다 보니 기표소 앞에서 순서를 다시 확인하거나 용지를 한 장씩 넘겨보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고령층 유권자들은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이게 다 오늘 찍는 거냐"고 묻거나 기표 순서를 다시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선거사무원들은 "투표용지를 받으면 순서대로 차분히 확인한 뒤 기표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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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본투표는 사전투표와 달리 주소지 관할 투표소에서만 가능하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여권 등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며 모바일 신분증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화면을 캡처한 이미지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 기표소 안에서 투표용지를 촬영하거나 투표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투표소 100m 안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 역시 제한된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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