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복원·PBS 폐지
AI 3대 강국 드라이브 성과
누리호 민간 이양 본격화
기초과학·인재·연구생태계 혁신은 숙제
"가장 분명한 성과는 과학기술이 다시 국정의 중심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바라본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의 진단이다. 연구개발(R&D) 예산 복원과 연구환경 정상화에는 성과가 있었지만,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조적 혁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1년간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큰 변화는 연구현장 정상화였다. 정부는 2026년 국가 R&D 예산을 35조원대로 확대하며 역대 최대 규모로 만들었다. 기초연구 예산도 대폭 늘렸고, 연구자들의 숙원으로 꼽혔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와 국가 R&D 예비타당성조사 폐지를 추진했다. 연구자들이 행정 부담에서 벗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들이다.
정 원장은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끌어올린 것, 과학기술·인공지능(AI) 부총리를 신설한 것, 그리고 의미 있는 실패의 자산화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 한국 과학기술이 추격형에서 도전형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변화의 신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AI 정책은 이재명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축이었다.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국정과제로 내걸고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등을 추진했다. 대통령실에는 AI미래기획수석이 신설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17년 만에 부총리 부처로 격상됐다.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역시 지난 1년을 '연구 생태계 복원의 시간'으로 바라봤다. 그는 "2026년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하고 기초연구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은 과학기술을 국가 성장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라며 "R&D 예타 폐지와 PBS 폐지는 연구자가 행정이 아닌 연구에 몰입하도록 하겠다는 의미 있는 제도 개혁"이라고 말했다.
누리호 4차 발사…뉴스페이스 시대 문 열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민간 참여 확대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11월 성공한 누리호 4차 발사는 정부 주도 우주개발에서 민간 중심 우주산업 시대로 전환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은 "누리호 4차 발사는 대한민국이 뉴스페이스 시대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라며 "그동안 정부 주도로 추진되던 우주개발 사업에 민간 기업들이 본격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한항공, LIG넥스원 등 주요 기업들이 발사체와 위성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우주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우주산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도 올해를 우주개발의 산업화 기반 마련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우주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누리호 연구개발사업 이후에도 연속 발사가 가능하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경남을 중심으로 한 우주항공 클러스터와 지역별 특화단지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며 "우주개발이 연구개발 단계를 넘어 산업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변화"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우주산업은 기술 개발과 산업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정책과 예산의 지속성이 중요하다"며 "특히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 등 인프라를 확보해 민간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예산 복원 넘어 연구생태계 재설계해야"
과학기술계는 이재명 정부의 남은 4년이 AI와 우주, 첨단바이오, 양자기술, 에너지 등 미래 전략기술과 기초과학이 균형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과학기술 선도국으로 도약시키는 체질 개선의 시간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 원장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R&D 연구 생태계의 구조적 재구성'을 꼽았다. 그는 "예산을 얼마나 더 투입하느냐 보다 R&D 투자 방식 자체의 뼈대를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가 전략기술 확보를 위한 임무지향형 연구와 연구자 주도의 창의적 기초연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설계하기보다 연구현장이 스스로 최적의 융합과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제도를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향식 연구와 상향식 연구가 시너지를 내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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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회장은 연구투자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과학기술 투자는 정권 주기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한 번 무너진 연구 생태계와 연구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AI와 전략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도 중요하지만, 그 토양이 되는 기초연구를 함께 두텁게 키워야 한다"며 "무엇보다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젊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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