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초록을 믿기 전에
변연미 개인전 '스스로 그러한 숲'
위로보다 먼저 다가오는 자연의 힘
초록의 평온 뒤에 숨은 붕괴와 회복의 시간
커피 가루는 대개 쓰고 버리는 물건이다. 한 번 끓는 물을 통과한 뒤 향을 잃고, 컵 바닥이나 필터 안에 잠시 남았다 사라진다. 변연미는 그 잔여물을 캔버스 위로 옮겼다. 숲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상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전시장 안에서 그 물질은 꽤 정확한 비유가 된다. 숲도 그렇다. 우리가 쉽게 '초록'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 부서진 줄기, 썩은 잎, 다시 자란 가지가 섞여 있다.
노화랑에서 열리는 변연미 개인전 '스스로 그러한 숲'은 숲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숲을 아름답다고 너무 빨리 말해버리는 습관을 멈춰 세운다. 1994년 이후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는 뱅센느 숲을 비롯한 숲의 산책을 오래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이번 전시는 5월 28일부터 6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주요 출품작은 아크릴과 커피 가루를 캔버스에 사용한 '다시 숲' 연작이다.
첫눈에는 익숙하다. 화면에는 나무가 있고, 잎이 있고, 빛이 있다. 숲이라고 부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변연미의 그림은 그 명명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줄기는 너무 곧고, 그늘은 너무 깊으며, 잎의 초록은 때로는 눈을 쉬게 하기보다 몰아붙인다. 자연은 이곳에서 휴식의 배경이 아니라 시선의 압력이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은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의식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1999년 유럽을 강타한 태풍의 기억이 있다. 작가는 폭풍 뒤 뿌리째 뽑히고 뒤엉킨 나무들을 보았다. 그 뒤 그의 선은 단순한 묘사의 도구가 아니라 자연을 이해해가는 방식이 됐다. 이 경험을 알고 나면, 화면 속 숲은 달라 보인다. 생명의 충만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뒤의 질서, 다시 자라나는 시간, 인간이 자연에 덧씌운 평온한 이미지의 균열이 함께 들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림은 더 흥미롭다. 멀리서 나무였던 것은 물감의 두께가 되고, 잎이던 것은 색의 입자가 된다. 커피 가루가 섞인 표면은 매끈한 풍경화를 방해한다. 그림은 숲을 닮으려는 대신 숲을 볼 때의 감각을 재현한다. 실제 숲에서도 우리는 전체를 한 번에 보지 못한다. 햇빛 한 조각, 젖은 나무껍질, 어두운 틈, 바람에 흔들린 잎의 뒷면을 따로 본다. 전체는 늘 나중에 붙인 이름이다. 변연미의 화면은 그 사실을 집요하게 환기한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제 숲과 닮았는가'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왜 숲을 볼 때마다 곧장 치유, 생명, 위로 같은 말로 달려가는가. 숲은 정말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자연은 인간의 기분을 받아주는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무관하게 오래 작동해온 체계다. 변연미의 숲이 어딘가 무심하고 완강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에는 사람이 없다. 집도 없고, 동물도 없다. 특정 장소를 설명하는 표지도 없다. 이야기를 만들기 쉬운 장치들이 빠져 있다. 남는 것은 줄기와 잎, 빛과 어둠, 그리고 그것들을 끝까지 붙잡지 못하는 관람자의 눈이다. 이 절제가 전시를 단순한 자연 예찬에서 멀어지게 한다. 작가는 숲을 인간의 서사 안으로 끌어오지 않는다. 숲이 인간 바깥에서 이미 충분히 복잡한 존재임을 보여줄 뿐이다.
'스스로 그러한 숲'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다소 냉정하다. 자연은 인간이 이름 붙이기 전부터 자연이었다. 우리는 숲을 보고 감동하지만, 숲은 감동시키려고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앞에서 생명을 말하지만, 숲은 생명과 소멸을 나누지 않는다.
썩은 잎과 새잎, 쓰러진 나무와 곧게 선 줄기는 같은 시간 안에 있다. 인간이 보기 편하도록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숲은 가장 오래된 비인간적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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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올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초록의 화려함보다 눈의 불안이다. 우리는 자연을 안다고 생각했고, 숲을 본다고 믿었다. 그러나 변연미의 그림 앞에서 그 믿음은 조금 늦춰진다. 숲은 풍경이기 전에 밀도이고, 위로이기 전에 힘이며, 이미지이기 전에 시간이다. 어쩌면 숲을 본다는 일은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이 얼마나 작은지를 배우는 일에 가까울지 모른다. 전시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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