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 지나도 기회 놓쳐" 설립 속도
성패는 정치입김 없는 독립 거버넌스
정부가 국부펀드를 전담할 별도 기구 설치에 나선 건 최첨단 기술 선점을 위한 글로벌 패권 경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가 주도적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해외에는 이미 신규 국부펀드 설립 열풍이다. 중동 국가와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인프라 등 국가 전략산업 육성과 자원개발에 집중 투자하는 국부펀드를 크게 늘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부펀드인 다난타라는 7개 국영기업을 편입해 9000억달러 규모로 지난해 출범했고, 카타르투자청은 브룩필드와 200억달러 규모의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AI 인프라 투자를 진행 중이다. 올해 43조달러 수준인 글로벌 국부펀드와 공적연기금 운용자산이 4년 뒤에는 59조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열린 '런던 한국경제 투자설명회(IR)에서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테마섹 같은 전략형 국부공사 벤치마킹…기업 성장을 국부로
재정경제부 혁신성장실 산하 전략경제총괄과는 지난 3월 말 나흘 일정으로 싱가포르를 찾았다. 현지에서 싱가포르 재무부와 미래투자공사가 모델로 삼고 있는 테마섹, 현지 글로벌 투자사들을 직접 만나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관련 테마섹 설립·운영 경험을 공유받기 위해서다. 싱가포르는 대외경제 충격 시 핵심적인 방어막 역할을 하는 재무적 투자(FI) 중심의 싱가포르투자청(GIC)과 국내 산업 육성과 해외 주요 기술 접근성 확보를 위한 기업 주주 성격의 전략적 투자자(FI) 중심의 테마섹, 투트랙 국부펀드 모델을 갖고 있다. 한국미래투자공사의 롤모델인 테마섹은 싱가포르 재무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정부 투자 지주회사로, 원유 같은 재원 없이도 자국 국부펀드를 세계 10위권으로 키워냈다. 1974년 출범 당시 3억싱가포르달러에 불과하던 운용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4900억싱가포르달러 수준으로 불어났다.
정부가 기존 한국투자공사(KIC)와 별도의 공사 설립에 나선 건 산업 경쟁력과 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전략형' 국부공사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미래투자공사의 목표는 기존 KIC와는 확연히 다르다. KIC는 위기 시 즉시 동원해야 하는 '달러 곳간'인 외환보유고 일부를 운용하다 보니 미국 국채처럼 신용도가 높고 환매가 쉬운 자산에 보수적으로 투자한다. 대외 충격 방어에 초점을 둔 KIC와 달리 미래투자공사는 AI·로봇·바이오 등의 유망기업 M&A와 지분투자를 통해 '국가전략산업 투자자'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미래투자공사는 우선은 국내 투자에 집중하지만 필요시 해외투자까지 확대하고, 직접 장기 투자를 위한 기업을 찾기 위한 간접 투자도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테마섹은 첫 투자 결정에서 5~7년 보유 후 엑시트를 가정해 검토하지만, 10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보유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한 전략적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이 국부로 되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 대비한 국가 '적금'…거버넌스 확보에 성패 달려
정부가 별도 공사 설립에 나선 건 재정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어려운 시기, 미래에 대비한 국가의 '적금'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정부가 벤치마킹한 싱가포르의 경우 보유 국부 운용 수익의 최대 50%까지 배당 형식으로 정부에 환류하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 정부 연간 예산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매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이 100조원 안팎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더 늦기 전에 미래세대를 위한 '적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발생한 대규모 초과세수를 단기 지출로 소진하는 대신 국부펀드에 투입해 그 운용 수익과 투자 이익을 국가 재정과 유망 산업의 생태계로 환류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정부는 반도체·방산·K컬처 등 영향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와 관심이 높은 지금을 국부펀드 출범 적기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 기반의 글로벌 투자기관인 라이트하우스 캔톤은 "최근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으로 3~4년만 지나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의견을 재경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동 등지의 갈 곳 잃은 자금들이 아시아 시장으로 쏠리고 있으나 동남아 부패 문제, 중국의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공사 설립 이후 테마섹, 다난타라 등 해외 국부펀드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등 기업의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외 다양한 산업·기업에 네트워크가 있는 국부펀드가 기업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며 "국부펀드 설립 이후 해외 국부펀드와의 협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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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펀드 성공의 핵심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난 거버넌스(지배구조) 확보에 달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능력이 검증 안 된 퇴역 관료들의 재취업 통로로 비쳐서는 안 된다"며 "투자, 자산운용, 리스크 관리 경험이 실제로 검증된 전문가를 우선해야 하고, 공직 출신이라도 민간 시장에서 성과를 낸 이력과 독립적 판단 능력을 보고 이사진을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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