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환 '기억되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기업 홍보 언어를 일상의 답변 기술로 옮긴 책

[김희윤의 책섶]말은 입이 아니라 위기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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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늘 사후가 따라붙는다. 하고 난 뒤 후회하는 말, 하지 않았어야 했던 말, 조금 다르게 했더라면 관계의 방향이 바뀌었을 말. 우리는 보통 말하기를 순발력이나 매력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말은 대개 재치보다 먼저 판단을 요구한다. 이 책이 붙잡는 것도 그 지점이다. 말은 입에서 나오지만, 좋은 답변은 입보다 훨씬 앞에서 만들어진다.


20년 차 기업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백주환의 신간 '기억되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는 '말 잘하는 법'을 다룬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답변을 설계하는 법에 가깝다. 저자는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영국 옥스퍼드대 MBA를 거쳤고, 액센추어 싱가포르와 EY 코리아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2015년부터는 오비맥주에서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맡아 회사의 공식 입장, CEO 인터뷰, 보도자료, 연설문을 설계해왔다.

기업의 말은 개인의 말보다 무겁다. 한 문장이 평판을 흔들고, 한 번의 답변이 위기를 키우거나 줄인다. 그래서 기업은 말하기 전에 계산한다. 누구에게 들릴 말인지, 어떤 오해를 낳을 수 있는지,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남겨둘지 따진다. 저자는 이 긴장된 언어의 방식을 일상의 말하기로 가져온다. 면접, 발표, 회의, 공격적인 질문 앞에서 개인도 사실은 작은 대변인이 된다는 것이다.


책의 장점은 말하기를 '표현력'으로만 좁히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답변은 기술이 아니라 전략이며, 표현이 아니라 판단"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책 전체의 중심축이다. 좋은 답변은 매끄러운 문장이 아니라 상황을 읽는 능력에서 나온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상대의 불안을 가늠하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말을 고르는 일. 결국 답변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책은 AI 시대의 말하기와도 맞닿는다. 이제 문장은 기계가 빠르게 만들어준다. 그럴듯한 답변, 정중한 사과문, 매끄러운 발표문은 누구나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지까지 기계가 대신 책임지지는 않는다. 문장은 자동화될 수 있지만, 판단은 자동화되기 어렵다.


그래서 '기억되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가 말하는 '다름'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다. 더 많이 말하는 능력도 아니다. 오히려 덜 흔들리기 위해 먼저 생각하는 습관에 가깝다. 기억되는 사람은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말이 필요한 순간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다. 그 차이가 한 문장을 만들고,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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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 백주환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76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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