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손상 이미지에 일반담배는 기피
전자담배 구매·체험 의향은 오히려 상승

담뱃갑 포장지의 경고 그림이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오히려 전자담배를 '덜 위험한 대안'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24년부터 담뱃갑 포장에 ‘폐암으로 가는 길’ ‘실명으로 가는 길’ 등 새로운 경고 문구와 그림이 들어갔다. 강진형 기자

지난 2024년부터 담뱃갑 포장에 ‘폐암으로 가는 길’ ‘실명으로 가는 길’ 등 새로운 경고 문구와 그림이 들어갔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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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담뱃갑 앞뒷면에 흡연 폐해를 알리는 경고 그림과 경고 문구를 포장지 넓이의 50% 이상 크기로 표기하고 있다. 폐 손상, 질병 등 시각적 충격을 주는 이미지로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28일 미국 워싱턴 주립대 연구팀이 네 차례의 실험을 통해 담뱃갑 건강 경고 노출이 소비자들의 흡연 위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경고 그림이 예상치 못한 대조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일반 담뱃갑과 폐 손상·질병 사진 등이 포함된 그래픽 경고 담뱃갑을 각각 보여준 뒤, 전자담배에 대한 위험 인식과 구매·사용 의향을 조사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일반 담배에만 강한 경고 이미지를 붙인 경우와 전자담배에도 동일한 수준의 경고를 적용한 경우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그래픽 경고를 본 사람들은 일반 담배 흡연에 대한 공포감이 커졌지만, 동시에 전자담배를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제품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일부 참여자는 전자담배에 대한 호감도와 구매·체험 의향이 높아졌고, 실제 전자담배 사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일반 담배에만 경고 그림을 붙이고 전자담배에는 유사한 경고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 이 같은 대조 효과가 더 뚜렷했다. 반면 전자담배에도 비슷한 수준의 경고 그림을 삽입하면 전자담배를 안전한 대안으로 인식하는 효과가 완화됐다. 연구 공동저자인 엘리자베스 하울렛은 "흡연은 매년 미국에서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라며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 흡연만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위험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 담배뿐 아니라 전자담배에도 경고 문구를 표기해 소비자들이 담배 사용의 실제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내 청소년 77.3%, 첫 담배로 가향 담배 사용

이 가운데, 국내에서는 전자담배와 가향 담배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향 담배는 멘톨, 과일, 초콜릿 등 특정한 맛과 향이 나도록 만든 담배를 말한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향이 첨가된 액상제를 넣는 방식이 대표적이며, 필터에 캡슐을 삽입하거나 담배 포장지에 향을 입히는 형태도 있다.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 이행 지침도 향 첨가 성분이 담배·니코틴 제품의 맛과 냄새를 개선해 제품 사용을 쉽게 만들고, 신규 사용자를 유인하며 기존 사용자의 지속 사용에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경제DB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 이행 지침도 향 첨가 성분이 담배·니코틴 제품의 맛과 냄새를 개선해 제품 사용을 쉽게 만들고, 신규 사용자를 유인하며 기존 사용자의 지속 사용에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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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맛과 향이 청소년과 젊은 층의 흡연 진입 장벽을 낮춘다는 점이다. 국내 청소년 상당수가 처음 담배를 접할 때 가향 담배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일반 담배뿐 아니라 전자담배와 가향 담배에 대한 경고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담배 특유의 쓴맛과 매캐한 냄새, 목의 자극을 가려 담배를 덜 해로운 제품으로 오인하게 만들고, 흡연을 지속하게 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24년 청소년건강패널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의 77.3%는 처음 담배 제품을 사용할 때 가향 담배를 사용했다. 남학생은 79.5%, 여학생은 73.1%였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로 가향 담배를 시작한 청소년은 86.3%에 달했고, 이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9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경고 그림과 가향 담배가 만든 전자담배 함정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 이행 지침도 향 첨가 성분이 담배·니코틴 제품의 맛과 냄새를 개선해 제품 사용을 쉽게 만들고, 신규 사용자를 유인하며 기존 사용자의 지속 사용에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사에서도 가향 담배로 흡연을 시도한 경우는 비 가향담배로 시작한 경우보다 현재 흡연할 확률이 1.4배 높았다. 가향 담배로 흡연을 지속할 확률은 10.9배 높았다. 국외 연구에서도 향이 첨가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가 2년 뒤 담배를 끊지 못할 가능성이 비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보다 1.9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24년 국내 보고서를 보면, 궐련 판매량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새 3.2%가량 줄었지만, 같은 기간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6천541만 유닛에서 1억2천220만 유닛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지난 2024년 국내 보고서를 보면, 궐련 판매량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새 3.2%가량 줄었지만, 같은 기간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6천541만 유닛에서 1억2천220만 유닛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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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향 첨가 성분이 담배의 위험을 덜 느끼게 하는 도구일 뿐, 유해성을 줄이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향료나 당류는 전자담배 기기를 통해 가열돼 에어로졸 형태로 폐에 흡입될 경우 호흡기질환 등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국외 일부 국가에서는 담배 내 가향 첨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향 담배 판매량이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관련 대책 마련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은 가향 물질 함유를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문구나 그림 표시를 제한하고 있지만, 청소년 흡연 유입을 막기 위한 추가 규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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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흡연은 폐암, 두경부암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건강 위해 요인이다. 국내에서는 흡연으로 인해 연간 7만여 명이 사망하고, 약 15조 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계한다. 보건당국은 가향 담배가 장기적으로 신규 흡연 인구를 유입시키고 흡연 폐해와 사회적 부담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청소년과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과 경고 표시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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